2015년 3월 23일 월요일
여호수아 22:9-20
“오해”
사람이 살다보면 오해가 있을 수 있다. 오늘이 그랬다.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는 그리던 고향 땅으로 돌아가게 된다. 7년 전쟁이 끝난 후, 비로소 안식과 평화가 가나안 땅에 찾아왔다. 돌아가는 그들에게 풍성한 전리품을 나누었다. 승리한 후 그들이 보여준 넉넉함은 형제애를 느끼기에 충분하였다.
두 지파 반은 길게는 40년 짧게는 7년의 가나안 정복전쟁 동안 동고동락했던 형제들을 떠나면서 진한 아쉬움에 흔적을 남기고자 했다. 그것이 오늘 큰 제단을 쌓는 일이었다. 그들의 동기는 순수했다. 물리적으로는 강 건너였지만 열지파와 이별은 그들에게도 큰 부담이었다. 지리적인 나눔뿐만 아니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한 염려가 앞섰던 것이다. 강을 건너기 전, 자신들의 각오를 그곳에 새겼다.
“너는 삼가서 네게 보이는 아무 곳에서나 번제를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의 한 지파 중에 여호와께서 택하실 그 곳에서 번제를 드리고 또 내가 네게 명령하는 모든 것을 거기서 행할지니라.” 신명기 12:13-14
두 지파 반이 돌아가는 길에 요단강 가에 단을 쌓았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열 지파는 소동이 일어났다. 그들이 맨 처음 떠올린 것은 다른 제단에 대한 염려였고, 브올의 죄와 아간의 범죄였다. 한 사람의 죄가 이스라엘 전체에 화가 미쳤던 예를 들었다.
그들은 칼을 잡기에 앞서 진상조사를 위해 급히 사신을 보낸다. 제사장 비느하스와 열 지파에서 뽑은 지도자들이 동행했다.
하나님을 위한 제단이 아니라 자신들을 위한 제단을 쌓았다는 우려를 먼저 밝혔다. 그리고 너희들의 범죄를 막을 수만 있다면 자신들의 기업을 그들과 기꺼이 나누겠다고 했다.
“그런데 너희의 소유지가 만일 깨끗하지 아니하거든 여호와의 성막이 있는 여호와의 소유지로 건너와 우리 중에서 소유지를 나누어 가질 것이니라 오직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 외에 다른 제단을 쌓음으로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며 우리에게도 거역하지 말라.” 여호수아 22:19
그들은 분노했지만 경솔하지 않았다. 사건의 전후를 살폈다. 그리고 자신들의 것을 기꺼이 나누겠다는 새로운 제안을 하였다. 이러한 고백은 희생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설명할 수 없는 사랑이었다. 지난 7년 동안 전쟁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경주하면서 그들은 하나가 되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숙해진 것이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이 공동체였다.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서 기도할 것을 가르치셨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한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하셨다. 공동체의 죄를 위해서 기도할 것을 주문하신 것이다. 이 단 한 절에 ‘우리’라는 단어가 3번이나 반복되고 있다. 나만 깨끗해서는 의로운 사회가 될 수 없다는 하나님의 명령이시다.
물량주의 세습화 등, 한국교회를 향하여 쉴 새 없이 던져지는 돌을 바라보면서 내 손에 움켜진 돌을 내려놓아야한다. 그것은 그들만의 죄가 아니라 나의 죄이기 때문이다.
기도한다. 우리의 죄를 바라보면서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처럼 민족의 죄를 가슴에 품고 기도해야만 한다. 이 땅의 부패한 교회와 사회를 바라보며 흐르는 눈물로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