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슥 6; 5~8) " .. 하늘의 네 바람인데 온 세상의 주 앞에 서 있다가 나가는 것이라 하더라. 검은 말은 북쪽 땅으로 흰말은 그 뒤를 따르고 어룽진 말은 남쪽 땅으로 나가고 건장한 말은 나가서 땅에 두루 다니고자 하니 그가 이르되 너희는 여기서 나가서 땅에 두루다니라 하매 곧 땅에 두루 다니더라. ... 북쪽으로 나간 자들이 북쪽에서 내 여을 쉬게 하였느니라 하더라."
(질문) 하나님은 오늘 말씀처럼 왜 "하늘의 네 바람"을 내게 보내시어 내 심령의 동서남북 사방 곳곳을 '두루 다니다'라는 표현을 두 번 이상이나 말씀하시면서 두루다니며 보게 하셨을까?
순발력과 집중력이 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 일의 성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일이 답보상태에 머무르거나 진행이 안되면 좀이 쑤셔서 못견뎌한다. 이것이 나의 장점이자 단점인데, 이런 답보상태가 길어지면 인내하고 기다릴 수 있는 지구력이 필요한데, 내 속이 밴뎅이라 그러지를 못하고 박차고 나가기 일수였다.
내 인생에 처음으로 좋아해서 미치듯 빠져들었던 중국어 중문학이 3년 공부하니까 정체가 되었고 그러자 나는 싫증을 느끼고 다른 것에 관심을 두었다. 아참 대학입시 학력고사도 그랫던것 같고 직장생활도 마찬가지여서 젊은 날에 이곳 저곳을 미친년 널뛰듯 왔다리 갔다리했다. 그나마 마지막 직장에서는 하는 업무가 공장부지 개발하여 완공하는 것에서부터 영업망 개척이라 내 적성에 맞고 변화무쌍한 일이 많아 8년정도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았다. 지금하는 식당도 5년여 했는데 주위 관리사무소 직원들이나 집주인은 엄청나게 "堅持(지엔츠, 끈질기다, 쇠심줄이다)하다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지만, 그것도 아내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내가 기분좋아 헤헤 거리거나 말거나, 정신이 헷가닥해서 병적인 화를 부려 온 집안을 쑥대밭을 만들거나 말거나, 눈탱이 밤탱이 되어도 눈 깜짝않고 쇠심줄 모양 오로지 가게를 지켰던 우리 신집사 내 아내 덕분에 지금까지 유지하며 왔음을 나는 잘안다.
새벽에 눈을 떠 주님이 주시는 만나를 받아 먹으며 그 은혜에 젖어 산 지 한 달하고 보름, 그 예전 바벨론 포로시절이 꿈만 같은 옛 날인듯 멀게만 느껴지고, 오늘 내게 임한 주의 은혜가 어느새 일상이 되어 처음 느꼈던 감사와 감격이 예전만 못해가는 것도 사실이다. 내게 붙여준 사람들의 구원에 대한 애통함의 기도가 사라져가고 있고 나도 모르는 사이 바쁘고 습관화된 일상에 아무 의식없이 나 홀로 천국, 나혼자만의 행복에 빠져 안일하게 살려는 옛 '돼지근성'이 조금씩 스물스물 나오기 시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님의 은혜로 에바속에 갇혀 바벨론으로 보내진 나의 큰 원수, 음란한 영들은 영원한 지옥 무저갱으로 봉인된게 아니라 아직 세상속에 갇혀 있는 것이고 내가 언제든지 봉인된 납을 풀기만 하면 나는 언제고 다시 죄의 노예가 될 수 있음을 어제 새벽큐티 설교를 통해 알게 되었다. 사실 큐티말씀이 없다면 우리들교회에 날마다 올리는 '거룩한 부담감'인 큐티나눔이 없었다면, 그리고 주님이 일깨워주신 내게 있는 폐쇄공포증같은 공포와 불안이 바로 음부의 그 맛이고 내가 지옥에 떨어지면 영원히 갇혀 있을것이라는 경고가 없었다면, 아마 은혜받고 난뒤의 예전방식대로 up-down을 반복하며 절름발이같은 신앙생활을 유지하다 얼마 못가 음녀의 더러운 유혹에 푹빠져 주님을 배신하고 주님의 시간을 허랑방탕하게 보냈을 것이 분명하다. 사실 음란 도서 및 동영상을 보는 습관같은 중독은 중1때부터 1달전 대회심 사건 이전까지 나를 줄곧 따라다니며 주의 길을 방해 해 왔던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나의 큰 대적이었다.
주님은 오늘 내게 (7절) " 건장한 말은 나가서 땅에 두루다니고자 하니 그가 이르되 너희는 여기서 나가서 땅에 두루 다니라 하매 곧 땅에 두루 다니더라."라고 하신 말씀처럼 나의 그 냄비근성, 참을성없고 밴댕이같이 속 좁고 조급한 내 가문의 유전죄, 그래서 배신을 밥먹듯 하는 이 죄악을 지적하셨다. 50평생 지(知), 정(情),의(義)라는 세상의 진리를 내 삶의 모토로 맹자같은 군자처럼 고고하게 인간미 넘치는 선비같은 삶을 사는게 나의 이상적인 삶이었다. (비록 20대초반에 하나님을 알고 성경을 보기 시작했지만) 주님없는 생명 구원없는 공자, 맹자의 인(仁)도 결국은 인본주의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위선에 불과한 피조물의 사상임을 이번 회심사건을 통해 알게 되었다.
주님은 오늘 내게 마음을 침잠하게 갖으라 말씀하신다. 내 마음처럼 금방 쉽게 인위적으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본문을 통해 말씀하신다. (12절) " ...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싹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라고 하셨듯이 지금 처음의 그 뜨겁고 강력한 주님의 은혜를 체휼하며 날마다 흥분되고 감격에 넘치는 삶은 없지만 이미 한 달 반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그러면 좀 이상하다는 생각도 든다. 일상이 되어가는게 맞고요. 이렇게 말씀의 구조속에서 주님의
은혜를 체휼하고 영혼구원에 대한 애통한 마음을 잊지않고 날마다 여전한 방식으로 조급해하지 말고 인내함으로 주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도 훈련이라고 말씀하시는것 같다. 진득이 기다리라고.
오늘 아침 세 식구가 밥을 먹으면서 아내가 전에 사온 화초에서 새 '싹'이 나왔다고 감격해 하니까? 밥먹다 말고 우리 막내 아들 지환이 "무슨 파~야 ? 라고 한다. 우리는 박장대소를 했고, 우리집에서 왕성하게 자라는 화초들의 새 싹을 통해 나를 일으키신 그 주님이 (12절) "주님의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는 말씀을 상기시켜 주시는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적용/결단)
1) 의식적으로 주님이 내게 붙여준 귀한 영혼들을 위해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10분 기도하겠다.
2) 아직도 음란의 영들이 수시 때때로 나를 미혹하는 것을 느끼는데 방심하지 말고 오늘 말씀을 상기하여 내 마음을 더 경계해야겠다. 오늘은 아내를 더 사랑해 주겠다.
(기도)
좋으신 주님. 우리집에서 지환이 키처럼 쑥쑥 자라는 새싹을 통해 그리고 큐티말씀으로 나와 우리 가정을 주님이 지켜주시고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여 주시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좋은 소식도 나쁜소식도 따지고 보면 없다고 김양재 목사님이 말씀하셨는데 아직도 바벨론 연호를 쓰며 그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해 성령의 소욕을 거스리고 조급히 결과와 가시적 성과를 바라는 저의 노예근성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고 진득하게 가마솥처럼 듬직한 마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때가 되면 찾아오는 시절처럼 주님을 바라보며 진득히 기다릴 줄 아는 인내의 정수 듬직한 정수로 거듭날 수 있도록 은총내려 주옵소서. 들뜬 저의 경박한 마음을 주님의 말씀으로 붙들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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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환이가 밥먹으면서 무슨 파야한 그 화초)
(지환이 키처럼 쑥쑥자라는 새 '싹''들)#652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