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18일 수요일
여호수아 20:1-9
“주 안에서”
도피성은 부지중에 살인을 저지른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였다. 그냥 법이 아니었다. 우발적 범죄 즉, 과실치사에 대한 안전장치를 만드신 것이다. 레위지파에게 할당된 48개의 성읍 중 6개를 '도피성'으로 지정하였는데, 실수로 사람을 죽이면 이곳으로 달아나 정확한 판결을 받을 때까지 보복을 당하지 않고 목숨을 보존할 수 있었다.
공동체 구성원 간에 보복심에 불타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가 되지 않게 하려는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여섯 개의 도피성은 각 지파가 사는 지역의 중앙에 위치했다. 죄인들이 어디서나 가까운 곳으로 빨리 피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유대인의 전승에 의하면 도피성으로 가는 길은 넓이가 14m나 되었으며 길에는 표지판을 크게 세워놓았다고 한다.
성도의 발걸음은 영원한 도피성이신 예수님을 향하여 걸어가는 길이다. 비가 오는 날 바람이 더 분다고들 한다. 이처럼 겹쳐진 고통의 순간에, 눈에 크게 띄는 표지판 세워져 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한복음 14:1
때로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 오도 가도 못할 때, 이런 위로의 팻말이 보인다면 그는 희망을 버릴 수 가 없을 것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28
또 도피성의 특징 중 하나는 누구나 볼 수 있는 곳, 즉 산 위에 있었다. 하룻길이면 도착할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골고다 역시 모든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는 언덕에 있었다. 주님께서 못 박히시며 벌리신 두 팔 안에 새겨진 큰 글씨 ‘누구든지’를 읽는다.
“이는 곧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을 위하여 선정된 성읍들로서 ‘누구든지’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리로 도망하여 그가 회중 앞에 설 때까지 피의 보복자의 손에 죽지 아니하게 하기 위함이라” 여호수아 20:9
‘누구든지’는 예외가 없다는 말씀이다. 지위고하를 막론하였고 피부색을 초월하였다. 배운 자와 못 배운 자를 차별하지 않았다. 빈부를 따지지 않았다. ‘누구든지’라는 말은 구원을 위해 열어놓으신 하나님의 자비가 넘치는 단어이다.
도피성은 예수님의 그림자이다. 도피성 안에 있을 때만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예수 안에 있을 때만 원수로부터 보호를 받는다. 죄인이었던 사람이 대제사장이 죽은 후, 자유를 보장 받는 것처럼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죽음이 죄인들에게 영원한 자유를 선언하신다. 이것은 성도에게 유죄를 선고하려는 사탄에게 공소권이 없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가슴이 뛴다. 우리의 영원한 도피성이 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바라본다.
고린도전서 15: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를 외쳤던 영원한 자유인 사도 바울의 당당한 음성을 되새기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