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14일 토요일
여호수아 18:11-28
“꿈을 그리게 하시다.”
가나안 땅을 정복한다는 것은 끊임없는 싸움이었다. 외적인 싸움 이전에, 내적인 싸움이 그들의 마음을 더욱 흔들어 놓곤 했다. 이 땅을 점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내면의 생각은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들을 쫓아내겠다.’(13:6)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늘 부딪쳤다. 하나님은 점령하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들의 내면에는 경험과 상식이 앞섰고, 눈앞의 현실은 끊임없이 정복할 수 없는 불행과 원망의 대상이 되곤 했다.
일곱 지파가 처한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여호수아가 실로에 이스라엘 온 회중을 모으고, 회막을 세운 것이다. 벧엘 동쪽 18km지점에 위치한 실로는 그 이름의 뜻이 ‘휴식처’이다. 여호수아는 실로 곧 휴식처로 온 백성을 모았다. 지난 50년 동안 그들의 삶의 중심이었던 회막을 다시 세웠다. 그리고 가나안 땅이 정복되었음을 선포하였다(1절). 그리고 아직 자신들의 기업을 분배받지 못한 일곱 지파의 낙망한 마음을 격려하였다.
“여호수아가 그들을 위하여 실로의 여호와 앞에서 제비를 뽑고 그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의 분파대로 그 땅을 분배 하였더라.”(10절)
여호수아는 남은 땅을 일곱 부분으로 책에 그려서 가져오게 한 다음 제비를 뽑게 했다. 그들 땅의 경계를 보다 명확하게 함으로써 그들에게 새로운 꿈을 그리게 한 것이다. 땅을 분배한다는 것은 3절에서도 보았듯이 완벽하게 준비된 땅을 주는 것이 아니었다. 앞으로 점령해야 할 땅을 이미 받았다고 믿는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것이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했다. 좁은 길이다.
땅의 경계뿐만 아니라 성읍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게 하였다. 아직 정복하지 않은 땅이었지만 이미 그들의 마음속에 새겨지게 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실로에 세워진 회막은 낙망한 자들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부르신 것이다. 원망의 짐을 지고 패배의식으로 낙망에 빠진 일곱 지파를 부르셨다. 그리고 실로의 하나님 앞에서 그들은 자신들에게 분배된 기업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셨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지파의 막내였던 베냐민의 성읍들의 이름을 읽다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지명이 등장한다. 가장 적은 땅을 분배 받았지만 앞으로 나누어질 북이스라엘 왕국과 남 유다 왕국 사이에 위치한 요충지였다. 그들이 품었던 여리고성은 앞으로 베냐민 지파에게는 他山之石(타산지석)으로 다가왔을 것이고 벧엘은 자신들의 조상 야곱이 하나님을 만났던 장소이기도 했다.
그들은 이러한 성읍들의 이름을 기록하면서 잊어버린 비전을 다시 찾게 된다. 그들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웠던 가나안 땅의 현실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만난 것이다.
낙망한 채 어찌할 바를 몰라 불안과 정처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들에게, 실로와 실로의 하나님께서 그들의 손을 다시 잡아 일으키셨다. 그런 뜻에서 실로는 낙망한 마음을 일으켜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게 해주는 참된 휴식처였다.
우리 하나님은 실로의 하나님이시다.
일곱 지파 백성들이 실로의 하나님 앞에서 무너진 마음을 일으켜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게 하신다. 오늘도 실로의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마음을 일으키시며 세상을 향하여 걸어가게 하신다. 이 땅에서 살게 하신 한 날, 실로의 하나님께서 나와 동행하심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힘찬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