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28: 3~5절)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으로 말미암아 독사가 나와 물고 있는지라 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
로다 하더니.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질문)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하나님이 나와 우리 집안을 구원하시기 위해 바울에게 허락하셨던 내게 있어 독사에게 물린 사건은 무엇이고 조금도 상함도 없이 회복된 나는 가족들에게 주님을 증거하여 가족들을 복음으로 이끌었는가?
바울은 유라굴로 광풍속에서도, 쉼터인 메리데에서 장작불을 지피다 독사에게 물렸음에도 너무도 침착하게 사건 뒤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며 조금도 요동치 않고 생명 구원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오늘 본문을 통해 볼 수 있다.
우리가족은 불신앙에 인본주의에 쪄들어 살아온 오늘 본문의 멜리데 원주민과 조금도 다를바 없는 집안이다. 중국에서 사업하다 망해서 생명만 부지한채 아내와 어린 아들을 데리고 도망치듯 한국의 어머니 집으로 오게 되었다. 당시 동업자에 속아 송사 사건에 휘말린게 나에게는 (3절) 독사에게 물린 사건이었다.
온 집안의 기대주, 어머니의 자랑거리인 내가 중국에서 집도 모든 재산도 다 버리고 빈몸인 상태로 검찰에 조사를 받는다는 사실은 우리 집안 사람들은 (6절) 그가 붓든지 혹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기다렸던 나의 사망 선고같은 사건이었다. 어머니 외가집을 비롯한 친척들과 형들, 누나를 비롯한 동기간 모두 혹시 자신들에게 경제적인 원조를 부탁할까 말로는 걱정을 하면서도 애써 모른채 무관심해 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기대고 도움을 청해 보았지만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였고, 오직 내가 믿었던 하나님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매달렸다. 그래서 집근처 교회에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내 무너진 자존감은 회복되기 시작하였다.
유일하게 어머니가 후회와 스트레스로 잠못자고 우는 내 옆을 지키시면서 마치 죽어가는 아들을 바라보듯 안쓰럽게 보고 계셨는데, 어머니는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 주신것을 알고 계실 것으로 믿는다. 당시에는 내 문제가 어머니의 문제이기도 하였던 것 같다. 그래서 간절하게 하나님께 기도했던 기억이 난다. 이 문제를 통해 내가 좀 더 말씀에 깨어있고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있었더라면 바울이 원주민들을 주님께 인도하여 구원을 얻게했듯이 어머니를 비롯한 우리 집안의 구원의 사건이 임했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주님의 은혜와 도우심으로 내 영성이 회복됨은 물론 생각지도 않은 사람을 통해 이 문제를 말끔히 해결하여 주었다. 당연히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보살핌으로 (6절) 아무 이상이 없이 살아 났는대도 나는 어머니에게 왠지모를 주눅이 들어 한 번도 당당히 복음을 전하지 못하였다. (롬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라는 말씀이 아직 마음 깊이 체휼하지 못한 나의 덜성숙된 믿음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사도행전 큐티를 하면서 아침 식사후 아내와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는데, 오늘은 바울이 살던 시기에 대해 얘기를 했다. 바울이 살던 AD 50~60년대면 우리 나라는 고주몽,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나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전설따라 삼천리같은 얘기이다. 그런데 사도행전의 기록을 보면 오늘을 사는 나도 놀라울 정도로 기록이 정교하고 세밀하다. 유라굴로 광풍이라고 해서 나는 우리나라 매년 찾아오는 태풍이름까지 기록하냐고 처음에 오해를 했다. 우리 선조들이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을 살 때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 마치 오늘을 사는 우리와 조금도 다름이 없이 주의 복음을 목숨 다해 전하고 있다.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 조상님들 몇 천년을 거치고 거쳐 예수님 태어나시고 2000년만에 예수님의 믿음의 씨앗이 우리 가문에 떨어져 발아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 어둠속에서 기다리고 기다렸을까. 내 나이 50에 반평생 이리저리 방황하다 이제 겨우 겨자씨만한 믿음이 생겼다. 두 아들은 제하고도 어머니는 76세이고 그 밑에 달린 내 형제들 조카들, 외가집을 생각하면 마음이 막막해 옮을 느낀다.
(행26: 6) 하나님이 우리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라는 말처럼 성부 하나님의 만세전부터 계획하시고 약속하신 믿음의 뿌리와 구원의 약속을 성자 하나님의 기막힌 디자인 하심과 내속에서 지금도 말씀으로 위로하시며 내게 힘주시는 성령하나님만 바라보며 오늘 하루도 내게 주어진 십자가 굳게 짊어지고 내가 거한 처소에서 바울이 그렇
게 유라굴로 광풍에도 독사에 물려도 오직 복음만을 증거하며 담담히 가듯 바울의 그 바위같은 믿음을 바라보며 오늘도 어머니 구원을 향한 막막한 마음을 애써 달래 본다.
(적용/결단)
1. 어머니, 지산(큰아들), 큰 처남에게 이번주안에 내 죄로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참담한 사건속에서 주님의 도우심으로 무덤에서 3일만에 다시 살아난 나의 간증을 편지로 보내어 복음을 당당히 전하겠다.
2. 내 일기장에 나에게 있어 무덤에서 3일만에 다시 살아난 간증문을 진정성 있게 써보고 앞으로 전도할 때 활용하겠다.
(기도)
좋으신 하나님 저를 어두 컴컴한 죽음의 골짜기에서 수도없이 건져주시고 보호해 주시며 이렇게 우리들교회 멜리데 섬까지 이끌어 주셨는데 제 잘난 맛에 주님을 배신하고 살아온 저의 교만과 악함 음란한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구원을 위해 태어나 구원을 위해 살다 구원을 위해 간다고 하신 김양재 목사님 말씀이 저의 좌우명 되게 하여 주옵시고 될 수만 있다면 날마다 저라는 질그릇이 깨지고 깨져 우리 가족들과 내 주변 사람들 살리는 약재료로 사용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이름으로 가도드렸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