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5일 목요일
여호수아 13:8-33
“모세가”
“므낫세 반 지파와 함께 르우벤 족속과 갓 족속은 요단 저편 동쪽에서 그들의 기업을 모세에게 받았는데 ‘여호와의 종 모세가’ 그들에게 준 것은 이러하니” 여호수아 13:7
여호수아가 땅을 나누면서 그 기초가 된 것은 예전에 주어진 모세의 명령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 보지 못한 가나안 땅에 대해서 이미 구역이 정해졌고 분배를 받았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미지의 땅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미 받은 것으로 여겼다. 가나안은 그들의 삶의 목표였고 가치였다. 또 다른 말로 비전이었다.
지난 날,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걸어갔던 아브라함의 꿈이었다. 약속의 땅이었다. 창세기 12장에서 ‘말씀을 쫓아간 삶’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그 역시 실패라는 험준한 산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회개의 준령을 넘어야만 했다. 그때마다 그의 가슴 속에 빛나는 별이 있었다. 말씀에 대한 신뢰였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러한 그가 걸어간 길을 믿음의 길이라고 하였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하셨다. 그 실상이 바로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믿음의 사람들의 발걸음은 예전이나 오늘이나 동일하다.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 역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천국을 향하여 걸어가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꿈꾸신다. 꿈이 이루어질 때 성취라는 말을 쓴다.
일제 36년간의 강점기를 거쳐 해방을 맞았으나 분단이라는 민족적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더 나아가 동족상잔의 6.25를 거치면서 한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누어야만 하는 분단이 고착화 되었다.
경제발전을 위해서 나와 우리 선조들은 막대한 희생을 치러야만 했다. 살기위한 생존이었고, 북한이라는 공공의 적을 머리 위에 얹고 살아가기에 희생을 감수해야만했다. 우리는 지난 날 고속성장이란 꿈을 가지고 달려왔다. 단군 이래 먹는 문제의 해결을 위해 쉼 없이 일해야만 했다.
요즘 ‘국제시장’이라는 영화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날, 우리의 자화상이 그려져 있기에 계층을 불문하고 영화에 열광 하고 있다. 자신들의 걸어온 삶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장면을 보면서 슬며시 눈물을 닦는 머리 희끗한 장년들이 많은 것도 한 이유일 것이다.
가난을 물리치기 위해 그래서 독재가 필요했다고 말하기도 하고 한편에서는 그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성장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다면 이제는 성숙을 기본가치로 삼고 주위를 돌아보아야 한다. 조금은 성장을 늦추고서라도 나눔이라는 복지를 향하여 나아가야할 것이다.
그 모든 나눔의 기초는 말씀이어야 한다. 고아와 과부의 아버지가 되시기를 자청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누어지는 나라, 하나님 나라이다. 이 일을 위해 교회가 연약한 지체를 돌보는 것은 너무나 소중하고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서울영동교회가 좀 더 장애인을 잘 섬기기 위해서 많은 비용을 들여서 장애인주간복지센터를 세웠다. 내일 개소식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오늘도 낮은 곳을 향하고 계신 주님의 시선으로 이 땅을 바라보는 아름다운 몸짓이다. 사랑이 나누어지고 사랑으로 하나 되는 나라를 꿈꾸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