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사도행전 21장 27절-36절 말씀입니다.
바울은 17-20절에서 그리스도인이라기보다는 유대인에 가까운 유대출신 그리스도인들을
달래기 위해서 정결의식에 동의했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은
성전 안에 있는 바울을 보고는 유대교에 비방하는 설교를 하는 자라고 주장하여 소동을
일으키고 이 소동은 폭동으로 확대되어 바울을 죽이려고 합니다. 이 때 로마 병사들이 나타나서
바울을 체포하고 그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무리들의 위협 때문에 안전을 위하여 막사로
데려갑니다.
작년에 학교에서 다른 학생을 폭행한 남학생을 제적처리한 일이 있었는데 바로 그런 나의
모습이 오늘 말씀에서 폭동을 일으킨 유대인일들과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결론부터 내려놓고 그에 어울리는 가정을 하지만 사실 자체를 검증하려 하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의로운 분개를 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폭행 가해자 학생과 그의 부모님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고 다른 기회를 주려고 전혀 고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학생은 훈육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고 가난한 저소득층
가정출신의 문제아이며 지금껏 충분한 기회를 주었다는 것이 나름의 제 생각이었습니다.
그를 학교로부터 격리함으로 학교를 정화하고자 했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폭력이 발생했던 상황을 검토해보니 폭행을 당한 학생이 원인 제공을 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학생은 계속해서 가해 학생에게 부정적인 언사를
행했고 참기 힘들 정도로 괴롭히기도 했습니다.
저는 또한 가해학생의 부모둘이 학생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으며 성적이 우수한
그의 형과 비교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폭도들처럼 저는 그당시
분노와 화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당시 로마의 지배하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원치 않는 로마 속주의
시민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로마의 지배로부터 그들을 해방시켜 줄 정치적인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들을 세상 욕망의 족쇄로부터 구원해 줄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설교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종류의 메시아를 원하지 않았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의 현신이라고 주장
하는 바울에게 분개했습니다. 학교의 발전을 위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나의 계획을 실행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나 또한 불만이 있었고 계획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상황에 대해서
화가 나 있었습니다.
폭행 사건은 그런 내 자신과 환경을 되돌아보게 해 주는 계기이며 그를 통해서 회개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회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학생을 학교 울타리 밖으로 내 쫓아서
그를 사지로 내몰았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내 죄를 보고 회개하게 하셨고 제적처리 했던 그 학생을 다시 학교로
복학시켜 그 아이를 도와주도록 하셨습니다.
제가 폭도의 무리에 속했을 때는 연민도 사랑도 이해심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를 향한 진정한 인도를 보고 들을 수 있을 때 까지 나의 행동을 제어할 외적인
힘인 로마 병사들이 필요했습니다.
주님! 나의 가정과 검증되지 않은 편견이 아닌 당신의 말씀에 의해 인도되기를 원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체휼하기를 원하며 고난의 시간 속에서 함께 해 주신 당신의
사랑을 찾게 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