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어제는 아브라함 선교회 화요 기도 모임에 참석하여 그동안에 내가 믿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내 놓았고 형제, 자매님들의 말씀에 비추어 명쾌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너무나 기쁘고 감격스러웠습니다.
전능하신 주님! 주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어떻게 하면 말씀대로 살아가야할지를 알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31#12336;33)
우리 집에는 난이 지금도 아름답게 피어있었고 올해에는 주변에 꽃들이 아름답게 피어 있어서 뭔가는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주변에 있는 동료가 참으로 예사롭지 않다며 자신도 승진을 할 때에 꽃이 아름답게 피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은 성경이 말씀하고 있지 않고 있으며 내 자신이 느낌이었음을 분명히 아브라함 선교회 모임에서 알도록 하여 주셨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성경이 말씀하고 있지 않는 것에 느낌이나 생각으로 이해하면 망신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기에서 하나님 나라와 의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일상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이며 의라는 것을 분명하게 깨닫도록 하여 주셨습니다.
자꾸만 분리하여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모든 일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것이고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특히 복음 전파와 주님을 위하여 하는 일이라고 막연히 생각하며 자기의 맡은 일을 소홀히 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주님의 나라와 의를 구한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복음을 전하며 주님의 일이라고 하는 것에 먼저 그 일을 하고 난 후에는 다른 일들도 하면 되는 것입니다.
가끔 주의 일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며 먼저 그 일을 하라고 했지 다른 일을 소홀히 하라고 하지는 안습니다.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창세기 39:1#12336;3)
요셉은 애굽의 신하 보디발의 집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로 열심히 살아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보디발이 인정하였습니다.
요즈음 내가 가야 할 자리에 가지 못해서 만나는 직장 동료들이 나에게 위안을 줄려는 말들을 하지만 그것을 듣기가 거북스럽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다시 생각해 보면 세상에서 잘 되려고 하는 내 마음에 기인하여 불편한 마음이 들었던 것을 깨닫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무엇이 두렵고 떨리겠습니까?
진급이 물론 직장에서 중요하지만 그 것 보다 더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삶이 더 중요합니다.
무엇보다도 나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요한일서 3:1)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이 얼마나 큰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 큰 사랑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우리를 몰라보는 것은 그들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현대인 성경 요한일서 3:1)
하나님의 사랑은 말구유에서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피를 쏟아내 주심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이 나를 위한 십자가의 사랑이 나를 감동시킵니다.
하나님께서 손수 누추하고 험한 마구간에 오셔서 죄악에 얽매어 살 수 밖에 없는 나를 아니 인간들을 위하여 그 험한 십자가를 손수 지셨습니다.
누구를 위한 십자가입니까?
거룩하신 주님! 왜 십자가를 지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