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17일 화요일
신명기 7:1-15
“하나님의 것”
“그 성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바치되 남녀노소와 소와 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 여호수아 6:21
여리고가 무너졌다. 가나안 사람들에게는 죽음을 의미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 나라가 세워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여리고 성 안에 있는 모든 생명을 진멸할 것을 명령하셨다. 이 일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진 사건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을 대리한 전쟁이었다. 심판이었다.
이어서 생명의 소식을 전한다. 죽음 속에서 피어난 한 송이 꽃이었다. 기생 라합의 가정이었다. 유일한 피난처였다. 여리고 성 사람과 라합의 가정의 차이점은 도덕이 아니었다. 붉은 줄이었다. 창문에 걸려있는 붉은 줄의 약속이 그녀의 가정을 살렸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었다.
여리고성의 멸망을 하나님께 바쳐진 제물이라고 하셨다. 오늘은 그 제물을 탐낸 인간의 탐욕을 언급하신다. 아간의 범죄였다. 크나큰 승리 속에 감춰진 실패의 단초였다.
여리고성의 전투에서 대승에 고무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탐꾼을 보내면서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 이제는 하나님 없이도 자신들이 할 수 있다는 교만으로 가득 찬 것이다. 사령관이신 하나님을 배제한 싸움이었다. 심판이라는 명분을 잃어버린 채, 힘의 논리로 판단한 시작이 잘못된 싸움이었다. 그들의 실패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한 개인의 일탈을 공동체에게 책임을 물으셨다. 이것은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는 것이다. 온전히 바쳐지지 못한 이스라엘을 향해 진노하신 것이다. 그 일에 교만이 더해져 아이 성에서 패전으로 이어졌다.
여호수아는 실패 앞에서 엎드렸다. 할 말을 잃고 옷을 찢었다. 재를 뒤집어 쓴 채로 날이 저물도록 그렇게 있었다. 그는 원망으로 기도를 시작한다.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넘겨 멸망시키려 하시나이까?” 그러나 여호수아는 슬픔을 넘어서 하나님의 이름을 언급하며 생명의 길로 나아갔다.
여호수아는 위기의 순간에 엎드렸다. 여기에 늘 실패하는 내 자신을 보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한다. 나의 심령 속에 도사리고 있는 여리고 성 같은 난공불락의 자아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기도해야만 한다. 내가 주인 된 삶을 버리기 위해 기도하는 일이야말로 제대로 된 해결책임을 발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