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18: 2~3 18절)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고린도지역 유대인 공동체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바울을 도와 제3차 전도여행까지 수행했을까?
우리 부부도 중국 상하이 한인 공동체에서 조그마한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5년전 어쩔 수 없이 등떠밀려 식당일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식당에 대해 아무
경험도 없었고 이국땅에서 생존하기 위해 새벽부터 밤 늦도록 쉼없이 일했다.
왠만해서는 부부가 사업을 하지않는 건데, 내 경우로 미루어 짐작컨데 인건비
절감하려고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가 같이 사업을 했을거로 짐작한다.
별 인생이 없듯, 주님 만나기 전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같이 일을 하면서
우리 부부처럼 엄청 싸웠을 것이다. 손님과 직원들에게 오는 스트레스, 같이 붙어
살면서 오는 생활속에서의 불만과 괴로움을 '너 때문이야'라는 논리로 서로를 원망하고
싸우며 지옥같은 삶을 살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아마도 브리스길라의 '사울'은 아굴라가
아니었을까? 분명한 것은 내 아내의 '사울'은 바로 나인 것이다. 내가 내 아내의 갈등구조의
핵심이고 나만 온전히 서면 우리 집은 아무 문제 없다고 내 아내가 입버릇 처럼 얘기하곤 했다.
나는 돈 쓰는 일에 엄청 인색하다.
임대료가 너무 비싸 3년동안 한 번도 쉬지않았고
고생해서 번 돈이라 우리 가족이 헛되게 돈 쓰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꼭 불가피하게 필요한 것
이외에는 돈을 쓰지 않았는데, 그것이 자식들 교육비이다. 내가 유일하게 마음놓고 돈을 쓰는 곳이다.
내 아이들을 1류대 보내는 것이 내 소원이고 돈 버는 이유였다. 큰 아이는 결국 내가 원하던
대학에 못갔고 나는 한 동안 방황하다 내가 사는 이유를 '말년에 인생을 즐기자'로 바꿨다.
죽도록 고생하다 늙어서 병들어 돈 쓰지 못하고 죽으면 억울할것같아 그 때부터 비싼 돈을 들여
헬스장 회원권을 구입해서 열심히 운동을 했다. 말 그대로 잘먹고 잘살려고.
식당한지 5년이 되자 많이 안정이 되어 이제는 손님 안올까하는 걱정은 하지 않게 되었다.
가게도 커지고 직원 수도 많이 늘자 모든 것이 여유러워졌다. 나는 또 다른 생각을 하게 되고 점점
게을러지기 시작하였고 우울증 비슷한 매너리즘에 빠지기 시작하였다. 바쁜 식당 일을 아내에게
맡겨놓고 짧을 때는 10일에서 길 때는 한 달까지 누워서 무위도식하며 지내는 일이 반복되기 시작하였다.
말이 무위도식이지 누워 있는 내내 아내는 독재자 남편이 무서워 말 한 마디 불평 한 마디 못하고 속을
끓여가며 살아 왔을 것이다.
그러던 중 우리 식당이 중국인에게 기술전수 프랜차이즈를 하게 되었고
이를 보다 system화하여 본격적인 프랜차이즈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금년 설즈음에 일도 보고
어머니 및 친지들에게 인사도 드릴겸 한국을 가게 되었다. 물론 예전에 친하게 지냈던 우리들교회 목자님과
친 형처럼 지내는 형을(그 분도 목자님) 만나러 불가피하게 우리들교회에 가게 되었고, 피치 못하여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수요예배 설교였는데 다윗이 그 많은 고난후에 살아서 역사하신 하나님을 노래의 말씀으로
찬양한다는 목사님 설교에 나도 모르게 막혔던 가슴이 눈녹듯 녹아 내리고 주체할 수없는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나같은 놈에게 왜 주님은 또 이런 은혜를 주시나. 내가 뭐라고 나 하나 잘먹고 잘살려고 주님을 버렸는데
이런 나에게 주님은 강권적으로 찾아 오셔서 어둠의 속박에서 나를 건져 주셨다.
그 날 주님이 나에게 강권적으로 치고 들어 온 그 날 이후, 내 인생의 가치관은 변하였다.
부족하지만 감히 바울의 발자취를 흉내 내보려고 하기도 하고 오늘 말씀처럼 아굴아와 브리스길라를 내 상황과
접목시켜 보기도 한다.
오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처럼 우리 부부도 주님의 은혜에 감복하여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자가 되길
소망한다. 내 아내와 두 아들이 지금 한국에 있는데, 있는 동안 내게 역사하셨던 그 주님이 아내와
두 아들에게 동일하게 역사하여 예배하고 부활하고 말씀이 흥왕하는 가정이 되길 소망해 본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렸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