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17;16-34
어제는 바울이 의기소침했겠지만, 누구를 기다린다는 것은 희망적이고 기쁨의 문을 여는 것과 같습니다. 바울이 힘을 내어 우상이 가득한 아덴을 보고 격분하여 회당과 장터에서 변론합니다. 그들은 정한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외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학문, 새로운 기술, 새로운 문화 등 새로운 것에는 관심이 많고 가장 최신의 지식과 문명은 그 사람을 높여주고 인정받게 하지만, 해 아래 새것이 없다고 합니다.
새로운 것을 찾는 인간의 욕망은 지금 시대 또 하나의 바벨탑을 쌓으며 하나님 자리에 올라가려는 것 같아 나같은 범인도 염려스럽습니다. 그 당시 세계의 사상 과학 문화의 흐름을 주도하는 아덴에서 혈혈단신으로 변론하고 쟁론하며 설교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주를 힘입은 담대함이었지만 자식처럼 사랑하는 실라와 디모데를 기다리는 마음도 한 몫 했을 것입니다.
가족과 헤어진 후 두 딸에 대한 그리움과 언젠가는 만날 기다림의 희망이 있었고, 말씀을 듣고 알아가고 찬양할 때도 두 딸이 함께 예배하고 같이 말씀들을 수 있기를 원하는 마음에 기쁨도 있었습니다. 들려주고 싶은 찬양과 해주고 싶은 말씀도 있어 상상속의 만남을 꿈꾸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너희를 생각하며 이렇게 살았다고, 너희를 버리지도 배신하지도 않았다고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2년전 큰 딸 졸업식에도 내가 왔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전해주지 못한 꽃다발을 아직도 가지고 있습니다. 가식과 위선이 섞여 있습니다. 하나님의 옳으심보다는 내의였습니다.
그러다가 2013년 12월 QT중에 요단 동쪽 후손들처럼 나도 자녀를 위해 제단을 쌓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식우상을 끈질기게 움켜쥐고 살았고 그것이 선인줄 착각했던 그 독한 마음이 풀어지게 되었습니다.
어제 날짜로 정과 육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 같습니다. 그들을 주님께 위탁하게 되었습니다. 어제 아침QT후 졸업식에 가지 않겠다는 적용을 적었습니다. 그래도 망설였습니다. 오전에 환자도 없었습니다. 가는 적용이 맞는 건가라고 잠시 생각했지만, 결국 점방 때문에 안간 것이 아니고 안가는 적용이 맞기 때문에 안가는 것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만일 오전에 바빠서 매출이 많았다면 돈 때문에 안간 꼴이 되었을 것이고, 마음 한 쪽에서는 안가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순수하게 구속사를 위한 적용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 같습니다. 어제 가지 않은 것 때문에 자식을 그리워할 명분도 없어졌습니다. 어제 하루 멋진 경험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또 멋진 응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종교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연약한 자였기 때문인지 어려서부터 무엇인가를 찾고 의지하려는 징크스와 우상같은 율법이 있었습니다.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교회를 떠나지 못하였고 이사 가서도 교회를 찾았지만, 나에게는 복만 바라는 알지 못하는 신이었습니다. 말씀을 모르니 하나님을 당연히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들교회에 와서 창세기를 듣기 시작하면서부터 오늘 바울의 설교처럼 하나님을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문자적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삶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시절에도 하나님께서는 나의 나쁜 소위를 보시고도 간과하셨으나, 이제는 말씀을 보고 들은대로 다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나를 자녀 삼아 주셨다는 것이고 살려주신다는 것입니다.
주님.
어제 하루는 감사했습니다.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지만 나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잊지 않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내가 바울의 영민함과 담대함을 따라갈 수는 없겠지만,
그 믿음은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도와주시옵소서. Jesus Name Amen
적용>오늘 주어진 시간을 잘 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