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본문은 사도행전 15장 22-35절 말씀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유다(바사바)와 실라를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파견하면서 할례를
주장하는 유대인들이 일으킨 문제에 대해 사과하는 내용의 편지를 전할 것과 음행을 삼가고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과 유대풍습이 금하는 음식물을 삼갈 것을 그들에게 당부합니다.
실라와 유다는 얼마 동안 안디옥의 형제들을 격려하고 바울과 바나바는 남아서 그 곳의 형제들을
가르치며 복음을 전합니다.
구원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일부 유대인 출신 크리스천들이
새롭게 믿음을 받아들인 개종한 크리스천들에게 강요한 할례의식에 대해 예루살렘 교회는
즉시 사과하기는 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유대의 전통적인 음식물 섭취를 주장하면서 유대인의
특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식물에 관한 환상과 수많은 이방인들이 성령에 감동하여 회심하여 세례를 받은 실재를
목격했음에도 그들은 유대식 관습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충만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앞으로 있을 문제를 볼 수 없었습니다.
개종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대두되기 시작한 신앙과 조직에 대한 기본적인 규정들의 #54614;요성을
그들은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유대인 출신의 기독교인들은 그들이 수 천 년 지켜온 조직의 전통을 고수하려 하지만 그것은 마치
새 술을 낡은 부대에 담는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제대로 그 가치를 살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미 낡은 관습을 떠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신앙의 자유로 옮겨 갔습니다.
내가 무엇을 먹는가하는 것은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 성기의 포피만큼이나 나의 순수함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입니다. 음식물과 포피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구원과는 상관이
없는 것들입니다. 바로 이것을 오늘 본문의 유대출신의 기독교인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저에게도 이와 비슷한 일을 처리해야 할 상황에 있습니다.
기능적인 면에서 고도로 잘 조직된 학교 운영 시스템과 그를 통해 지식을 익히고 스스로 깨우
칠 수 있는 많은 인재를 양산해 내는 조직의 운영에 익숙해 있습니다.
고도로 조직화되고 엄격하게 규정된 시스템으로 가르치는 교육으로부터 비판적이고 사고와
창의력에 초점을 맞춘 시스템으로 옮겨가는 과도기에 교사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더욱 더 많은 교육적 변화를 요구하는 시대에 교장으로서의 직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통합교과적인 학습과 인성 개발, 최첨단 신경과학에 근거한 탐구와 교수 기술에 대한 교육
과정등을 도입하여 시행하고 있습니다. 복잡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 아주 단순하고 그
효과는 매우 훌륭합니다.
하지만 다른 조직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전에 해왔던 내용과 방식에 익숙해 있는 개인이
어떻게 변화된 방식을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이 이러한 새로운 시도에 대한 성패의 열쇠를
쥐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낡은 부대에 나의 새로운 포도주를 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효과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학생뿐 아니라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 교육행정 담당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방식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어느 선까지이고 불편해하며 결국은 새로운 상황을 처리하는 것은 이전에
해 오던 낡은 방식을 고집하지만 효과가 있을 리 없습니다.
저 또한 바울이 느꼈으리라고 생각되는 비슷한 것들을 많이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는 예수님에 의해서 넘어졌고 다른 모든 것을 뛰어넘는 새로운 예배의 전형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공생애 3년 동안을 함께 하지 못했고 그 분의 직접적인 가르침을 받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사도들이 하는 이야기와 반복해서 말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바울은 바리새인으로 훈련되고 길러졌기 때문에 베드로 이상으로 율법과 규정에 대해 많이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규정들이 새로운 계시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왜 그가 할례를 주장하는 무리에게 한 발 물러나 돌아와서는 베드로를 설복시킬 수 있었는가
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저는 교육과 그 과정들에 대해서 파악을 하게 되었고 20세기의 교육의 광범위한
변화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과 같이, 하나님은 교무주임이자 학과장이라는 교만한 자리에 있던 저를 치셔서 황무지와도
같던 작은 대학으로 보내셨고 낡은 가정과 관행이 뒤엎어지는 거친 서부의 환경과도 같은 환경을
통해서 제 2외국어를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기적과 경이로움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다시 저를 초라한 학교로 되돌아가게 하셨습니다.
제게 주셨던 것을 모두 거두어 가셔서는 새로운 질서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그 학교의 변화를 이끌도록 하셨습니다.
유대주의에 갇힌 바울과 같이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교육에 관한 사실들을 다시
들여다보게 하셨고 전혀 다른 방법으로 적용하도록 하셨습니다.
바울과 같이 내가 경험했던 상황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인도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단 하루도 이 일이 나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지 않고 넘어가는 날이 없습니다.
사람을 다루는 기술은 무뎌졌고 설명하고 전달하는 기술은 막혀 버렸고 나의 격려는 힘을
잃어버렸고 나의 비전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대적들은 들고 일어나서 나를 짓누르고
불안감이 엄습하고 죄의 기운에 압도당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목장 공동체와 담임목사님의 설교를 통해서 나의 죄와 나의 실패들을
명확하게 볼 수 있게 되었고 그것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더욱 잘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기쁨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더 분명히 보게 될수록 그 분을 향한 나의 믿음은 더욱 커져 갔습니다.
전에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주님! 학교에 있는 여러 사람들을 지금보다 더욱 더 사랑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내게 주신 일들을 감당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은혜를 부어 주시옵소서.
내가 움츠러들고 있는 문제들을 처리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오른손으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나의 대적들에 맞서는 요새와 반석이 되어 주시고 성령으로 새롭게 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