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사도행전 15장 1-11절 말씀입니다.
유다에서 온 몇몇의 유대인들이 이방인들도 구원을 얻으려면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에 안디옥 교회는 확답을 얻고자 바울과 바나바를 예루살렘으로 보냅니다.
베드로는 믿음으로 마음이 깨끗해져 예수를 영접한 사람은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차이가 없으며 구원은 유대인들의 조상도, 그들 자신도 지키지 못한 모세의 율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주예수의 은혜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이방인들이 할례 받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합니다.
산다는 것은 힘이 듭니다.
저는 제 주위의 다른 사람들과 환경이 나의 삶을 힘들게 한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여러 가지 나름의 근거들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 아내의 알코올 중독은 내 삶을 힘들게 만들었고
처남이 내 삶을 어렵게 했으며
아내의 건강이 나의 삶을 곤고하게 했으며
내 자신의 건강악화로 인해 내 인생은 힘들어졌고
한국의 교육당국이 외국인 학교 교장인 나의 삶을 곤란하게 했으며
이라크의 전쟁으로 인해서 그 지역의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학생을 받아들여야
했던 일로 나의 삶은 피곤해졌음과 같이
나의 삶을 힘들게 하는 크고 작은 일들을 나열하기도 어렵습니다.
인생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관점을 달리해서 보면 내가 다른 사람들의 삶을 힘들게 한 많은 경우가 또한
존재합니다. 내 아내와 처남과 교사들, 학생들, 나의 어머니, 나의 자식들, 이웃들
그리고 나의 한국말이 너무 서툴러서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곤란해 했던 버스기사들
등이 내가 그들의 삶을 어렵게 한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새로운 율법주의자 바리새인 일파는 새롭게 믿음을 받아들인 초대교회 시절의
이방인들을 할례로 시작하여 자신도 지킬 수 없는 수 백 가지 율법을 지켜야만 하는 유대인으로
변화시키려고 시도함으로써 그들의 삶을 힘겹게 만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받아들이셨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유대인들은 여전히 그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초대교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두 인물인 베드로와 바울은 기존 교회에게 이방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을 설득하는데 많은 부담을 느꼈습니다. 전통적인 유대인의 생활방식과 통과의례를 전혀
거치지 않은 이방인들의 믿음을 인정하도록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55세가 될 때까지 저는 하나님과 또한 나의 환경과 씨름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었고 우리에게 자신의 생명을 대속해 주신 것과 부활하신 것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처한 환경 대부분을 싫어했고 그것들이 변화되기만을 원했습니다.
나의 관점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만약 나의 환경이 변하기만 하면 난 달라질 것이고 나아질 것이다
나의 환경이 아니라 내가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가정적으로는 보통의 지능을 가진 중하위 계층 출신이며 전 세계적으로 보면 그리
대수롭지 않은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 출신의 백인 남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위의 사실들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 대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도 않았습니다.
나 자신과 내 주변 사람들 그리고 세상을 거부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순간에도 나에게 주어지는 것들은 내 삶의 결과라는 것을 인정하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여전히 그것과 씨름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저는 승리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나는 항상 나를 둘러싼 환경에 대해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 환경들에 대해 인정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기도 하며 때로는 그 환경들을 거부하며 원망하기도 합니다.
환경이 바뀌는 것은 나를 조금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그런 사실을 살아오면서 충분히 경험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잃고 YMCA의 임시숙소에 생활하던 그 낮은 환경에서도 교육 분야에서 최고를 누리던 시절의,
객관적인 나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을 거부하던 모습은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나의 환경은 변했지만 나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커다란 교훈이 되어 남았습니다.
환경은 나를 변화시키지 못했습니다. 유일한 변화의 가능성은 나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한 가지는 나의 환경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찬양할 것인지 계속해서 자신이
처한 환경을 거부할지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결혼이 실패한 이유는 내가 아내의 알코올 의존증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그 사건을 통해 하나님에게 초점을 맞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교사로써 훌륭한 경력을 쌓지 못한 것도 내가 가르치는 환경이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외의 다른 실패한 일들도 원리는 모두 같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태도를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인 지금의 결혼 생활은 꽤나 성공적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으로 나와 아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었습니다.
내 힘에 부치고 제한된 선택의 근무조건과 소규모 학교의 교장이라는 환경이지만 그것을 나의 환경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에 지금의 교직생활은 꽤나 만족스럽습니다.
환경은 항상 변합니다.
만약 마음으로 진지하게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나는 그 환경으로 인해 계속해서 불평하고 괴로워할
것입니다.
나의 매일 매일의 선택은 욥의 그것처럼 항상 똑같습니다.
나의 환경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찬양하거나 아니면 인정하지 않고 점점 더 괴로워 하거나입니다.
주님! 내가 처한 환경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계속해서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고 다윗이 했던 것처럼 당신을 향한 찬양의 노래를 부르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