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한 사람을 지키는데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겼다.
그만큼 그를 잡아두기가 힘들고, 지난번 옥에서 풀려난 사건보다 더 많은 병사를 보내
지키게 해서 자신들의 힘으로 옥에 가두어보려는 것 같다.
그렇지만 결국 어떤 불가능해 보이는 일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뜻이 있으시면 주의 사자를
보내셔서라도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꺼내신다.
헤롯 왕은 유대인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했다고 한다.
포퓰리즘처럼, 아무런 판단도 없이 단지 군중들의 이목과 인기에 열광하여 결정하는 일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대제사장들이 군중이 무서워 사도들을 해하지 못했고, 또는 군중들이 좋아해서 일을 벌였듯이 그들은 오로지 사람들의 반응에만 신경을 쓴다.
그렇지만, 그들과 다르게 우리는 하나님의 이목을, 반응을 신경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를 생각하고 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여전히 주변의 이목이 신경 쓰이고, 아예 무시할 수 없지만
무엇보다 우선해서 하나님이 이 일을 기쁘게 보실 것인가 생각해보아야겠다.
그리고 오늘 본문을 보며 사람들의 이목과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내가 하는, 결정하는 이 모든일을 기쁘게 보실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교회에 핍박과 박해가 가해지자 사람들은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고난은 축복인 것 같다.
세상 복에 대한 전망이 어두워지고, 내 인생이 한치 앞도 보이지 않으니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 같다. 내 취업 전망이 한치 앞도 보이지 않고, 통장 잔고가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이 상황이 나에게는 축복이고 하나님을 찾게 하고 간절히 기도하게 하는 나의 가족, 주변 사람들이 최고의 가족이고, 구성원들인 것 같다.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천사가 이르되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이르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대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가 하는 것이 생시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르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베드로는 헤롯이 내일이면 자신을 죽일 것인데, 죽음이 코앞에 있는데,
주의 사자가 옆구리를 쳐 깨울 정도로 정말 잘 자고 있던 것 같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도망갔던 그의 예전 행동을 보아서는 그의 성격 상이나 인품상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다만, 예수님을 부인하던 때와는 다르게 선민으로서의 성장을 해서 전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이제 하나님께 맡기고 이 세상에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 외에 욕심이 없기에 숙면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예전에 쿼바디스라는 영화를 본 적 있는데, 사람들이 사자에 물리고 뜯겨 죽을 때, 사람들이 웃는 얼굴로 죽음을 맞이 했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평안과 기쁨이 아닐까. 그런 상황에서 과연 누가 웃는 얼굴로, 또는 베드로처럼 숙면을 취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평안이 없다면 절대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지금 시대에는 목이 잘려 죽거나 하는 목숨을 잃는 순교는 없지만, 잘 참고 인내하는 것이 순교라고 하셨던 것 같다. 지난 주 설교 때 말씀하신 장로님이 왕따 당하는 상황에서 누가 찬송가를 부르고 다니고 신나게 생활할 수 있었을까. 순교하는 곳에서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께서 평안을 허락하셨기에 가능한 일인 것 같다.
시편 23편에도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 않음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라고 했다. 하나님과 함께면 내 마음이 평안이 넘칠 것이라 생각한다.
게다가 베드로가 심지어 환상인 줄 알았다는 것을 보면,
그는 정말 풀려나고 싶거나 도망치고자 하는 마음조차 없었던 것 같다.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여자 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그들이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여자 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그들이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그들이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지라 베드로가 그들에게 손짓하여 조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베드로를 보고 사람들은 놀랐다. 기뻐했다라고 쓰여 있지 않았다.
그렇게 간절히 하나님께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고 모여있었다면, 그 기도의 응답으로
베드로가 왔다는 소식을 로데에게 들었을 때, 믿었을 것이고
베드로를 눈앞에서 보았을 때 기뻐했었을 것 같다.
기도는 열심히 하지만 설마 이루어질 줄을 몰랐어.라는 심정일까?
나는 종종 그럴 때가 있다.
기도를 열심히 매일하는데, 매일 하는 기도제목이 아니라면 무슨 기도를 했는지
까먹어서 한참 나중에야 아~기도 응답이었었구나 라고 깨달을 때가 있다.
설마 이루어질까?라고 생각하는 것 보다 더 심한 것 같다.
앞으로 기도를 할 때에는 노트나 어느 곳에 적어서 보도록 해야겠다.
-베드로가 깨닫고 나서 향한 곳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이었다.
그는 그곳에 도착해 이 말을 전하라 한 뒤에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라고 쓰여진 것을 보면, 사람들에게 주의 메시지는 전하고 다른 사명을 위해 떠나는 것 같다.
그 곳에 자신이 숨기 위해 간 것이 아닌 것 같다.
눈 앞에 닥친 죽음 앞에서 숙면을 취하고 있던 베드로가 자신의 목숨을 위해 숨으려 가는 것도 아닐테고 주의 사자를 만나 나온 것을 보며 진정 하나님께서 생사화복을 주관하심을 알고
사명을 위해 더 큰 힘을 얻고 나아가는 것 같다라는 생각을 했다.
-꾸준히 기간제 자리에 대해서 묻고 기도하겠습니다.
-기도는 큐티책에 기록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