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30일 금요일
야고보서 5:7-12
“길이 참으라”
업친데 덮친격이란 말처럼 1세기 초대교회가 그랬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고향을 등진 사람들이었지만 계속되는 박해에 공동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면초가로 내몰리자 서로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매에는 장사가 없다고 하던가? 오신다던 주님은 언제 오시려나? 막연한 기다림에 그들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평안을 밀어낸 자리에는 어김없이 불안이 자리하게 된다. 이러한 흩어져 있는 열두지파를 향하여 야고보의 처방은 인내였다. 기다림의 끝은 언젠가 온다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당시 성도들이 대망하던 주님께서 바로 문밖에 서계시다고 권면한다. 그의 또 다른 이름은 심판주이시다. 알곡과 가라지를 나눌 것이다. 양과 염소를 판가름하실 분이시다. 그분께서 바로 문만 열면 그곳에 서계신다고 하셨다.
그 후, 2,00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주님은 여전히 문밖에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배가 고프시다. 당신의 백성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기까지 여전히 인내하시며 기다리신다. 당연히 하나님의 사랑은 현재진행형이다. 기다림은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사랑하시는 인내인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야고보서는 초신자들을 향한 말씀이라기보다는 예수를 믿었지만 고통 중에 있는 자들에게 보내는 희망의 초청장이다. 구원 받은 자들을 향해 참된 삶을 요구하신다.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릴 것을 요구하신다. 선지자들의 고난은 기억하고 욥의 인내를 거울 삼으라고 하신다. 그리스도인들은 기다림에 익숙한 자들이다. 그 기다림 안에서 소망이 자라기 때문이다.
박해를 받으며 믿음을 지켜온 자들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고난을 이기기 위한 수단으로 지혜를 지목하신다. 구하는 자에게 조건 없이 지혜를 주신다고 약속 하셨다. 그러므로 기도는 환란을 이기는 절대적 성도의 무기이다.
야고보서를 마치면서 중심 단어를 살펴보면 “혀를 조심하라, 말하기를 더디 하라, 비방하지 말라, 원망하지 말라, 맹세하지 말라.” 이 모든 것들이 말에 대한 교훈이다. 모든 생활의 중심에 말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말이다. 세상과 구별된 성도가 걸어가는 좁은 길의 원칙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하는 자들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라는 것이다.
우리들의 기다림은 주님의 오래 참으심이 전제된 것이다. 문밖에 서계신다. 앉아 계실 수가 없으시다. 성도들이 기다리는 인내의 시간은 닫힌 문이 아니다. 구원 받지 못한 자들에게는 하늘 문이 열려있는 기회의 시간이다. 이 놀라운 사랑을 가슴에 새기며 하루를 시작한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로다.” 고린도후서 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