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비난하여
이르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은 이방인들에게 말씀이 전해진 소식을 듣고
비난이라는 행동을 보였다고 한다.
본문을 보니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다라고 할 때에는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 이방인으로 나뉘는 것 같고..
비난할 때에는 할례자와/ 무할례자로 나뉘고 있는 것 같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을 때는
사도와 형제들/이방인의 차이점이 말씀의 유무인 것 같고,
비난할 때에는 할례라는 것이 그들을 구분하는 차이점 같다.
내 생각에는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곧 할례자들일텐데,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따라 주어가 달라지는 것 같다.
아마 시시각각변하는 그들의 행동에 따라
그들이 형제들이 되기도 하고 할례자가 되기도 하는 것 같았다.
비난하는 할례자들의 모습에서 권위의식과 소속감 동시에 배제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할례는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고 성경에서 읽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말씀을 통해 행해진 것이다.
나는 그래서 할례라는 의식보다 말씀이 더 우선한다라고 생각했다.
큐티인 옆에 설명을 보니 율법에 열심한 사람이 할례자이고
무할례자들은 음식에 관한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라고 나와 있다.
내가 생각한 것이 틀렸던 것 같지만, 율법의식, 곧 의식에 매여서
사람을 나누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에서도 어떤 무리를 구분할 때 의식으로 나누기도 한다.
중학교 때에도 물갈이라는 것이 있었고, 대학생 때에는 사발식이라는 것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그 의식과 관습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구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성당에서 유아세례를 받았었지만, 전혀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지 않았었다.
나처럼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정말 모두 다 같은 사람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어제 친구들을 만났는데, 나 또한 겉으로 확인되는 교회다니는 친구과
안다니는 친구로 나누어 생각했었는데 그것은 식전기도를 하냐 안하냐로 사람을 나누어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인 것 같다.
어제 교회다니는 친구라서 영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했더니 외면하고 회피하는데,
오히려 안 믿는 친구는 잠잠히 그 이야기를 듣고 아~그런 것도 있느냐고
궁금해 하며 들었다. 물론 성품일 수 도 있지만, 우리가 겉으로 보이는 어떤 의식이나
신분으로 사람을 나누기보다 예수님을 만나고 그 사람에게 말씀이 있는지가 앞으로도
사람을 생각하는 데에 중요한 차이점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 이르되 내가 욥바 시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환상을 보니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네 귀에 매어 하늘로부터 내리어 내 앞에까지 드리워지거늘 이것을 주목하여 보니 땅에 네 발 가진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보이더라 또 들으니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내가 이르되 주님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거나 깨끗하지 아니한 것은 결코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 하니 또 하늘로부터 두 번째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말라 하더라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에 모든 것이 다시 하늘로 끌려 올라가더라
-더러움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한 것 같다.
하지만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내가 속되다고 하지는 말아야 할 것 같다.
베드로가 부정한 음식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을 보고 더럽다, 부정하다라고 인식을 했었기에
하나님이 그것들을 깨끗하게 하시는 이 성경의 내용도 성립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마찬가지로 내가 더러운 죄인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어야
하나님이 나를 깨끗하게 씻기셨다는 것도 성립되고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자신이 더럽고 추악한 죄인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참 중요한 것 같다.
그래야 내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씻김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도 알게 되고
죄사함을 받았다는 것도 인정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더러운 죄인인 것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하나님께서 내 죄를 용서하심을 잊어버리고 스스로 정죄감과 우울, 두려움에 빠지는 것은
곧 베드로가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끊어지지 않는 나의 죄와 정말 변하지 않는 나를 보며
절망감과 슬픔에 빠질 때가 있다.
그것이 심해지면 정죄감이 드는 것 같다. 하지만 그 때 내가 해야할 것은 회개이고,
예수님의 보혈을 기억해야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 계속 정죄감과 죄책감에서
생각하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너무 의미 없는 사건이 되어버릴 것 같다.
마침 세 사람이 내가 유숙한 집 앞에 서 있으니 가이사랴에서 내게로 보낸 사람이라
성령이 내게 명하사 아무 의심 말고 함께 가라 하시매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가서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가 우리에게 말하기를 천사가 내 집에 서서 말하되 네가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너와 네 온 집이 구원 받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 함을 보았다 하거늘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다고 하셨다.
믿음은 선물이다. 내가 노력하거나 타인에 의해서 생기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야 하는 것 같다.
어제 친구들을 만나며 끊임없는 세상얘기들, 남을 비판하는 이야기
그냥 겉도는 이야기들, 외식 등...내가 하나님을 전할 틈은 정말 별로 없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본래부터 인간의 마음에 하나님을 찾을 수 있도록 씨앗을 심어놓으셨다고 했다. 종교심과 양심,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지각과 분별력, 종교를 논하는 것 자체 도 그런 마음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기에 언젠가 내 친구들도 하나님의 때가 되면
하나님의 방법으로 선물을 전해주시기를 기도한다.
-그들이 잠잠하여 한 말이 ‘믿음을 주셨다. 예수님을 만나게 해주셨다’도 아닌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라고 했다.
이방인에게도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 곧 ‘생명 얻는 회개’라는 것이다.
내가 처음 예수님을 만나고, 말씀이 들리기 시작한 것도 내 죄를 보게 되면서부터였다.
그리고 회개를 하게 되고... 내 더러움을 보고 죄책감에 빠지거나, 두려움, 정죄감에 휩싸이는 것보다 예수님이 나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수 밖에 없었음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것이 곧 새 생명을 얻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믿지 않는 내 친구들이 필요로 할 때 언제든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정죄감이 들 때, 그것도 기도로 말씀드리고 회개하는 마음을 주시라고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