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28일 수요일
야고보서 4:1-12
“결핍의 시대”
현대인을 진단하기를 목마른 세대라고 흔히들 말한다. 풍요속의 빈곤이니 군중속의 고독이란 말이 가슴에 젖어드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인 목표가 아니라 상대적인 빈곤에 시달리며 속고 있는 것이다.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야고보서 4:2-3
싸움의 원인이 결핍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 갈증을 채우기 위해서 현대인은 바쁘다. 그들을 자신의 힘으로 성을 쌓는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세상사람들이 아니었다. 흩어진 열두지파였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모인 교회 공동체였다.
그러나 야고보는 결핍의 시대를 두 가지로 진단하고 있다.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잘못 구하기 때문이다.
명쾌하다. 오늘 내가 부족을 느낀다면 기도생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의 기도생활을 돌아본다. 참 답답하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주시겠다고 하였는데 ‘주시면 다행이고 안 주셔도 할 수 없고’ 두 가지 마음을 동시에 드렸다. 이러니 응답하셨어도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인 것을 확신 하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태도였다.
결핍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기도한다는 것은 가능한 것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 힘으로 할 만한 것이라면 굳이 구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도무지 나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없기에 구하는 것이란 말이 되겠다.
목마른 시대를 한 번에 해결하시기 위해서 생수가 되셨다. 반석이 되셨다. 내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흐르게 하신다.
나를 사랑하신다. 시기하기까지 사랑하신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나를 사모하신다. 황송하다.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나를 바라보고 계신다. 나의 필요를 채우시기 위해 지갑을 여시고 이미 준비하고 계신다. 백지수표를 주시려고 기다리신다. 천국은행에서 발행한 선명한 예수님의 피로 새겨진 서명이 진홍빛으로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33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자.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살면 하나님께서 나의 필요를 위하여 일하신다. 이것은 단순한 권면이 아니다. 주님의 명령이시다. 더 이상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위하여 사는 자가 아니라고 하셨다.
수가성 한낮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물동이를 들고 동네 어귀에 우물을 향하였던 여인이 있었다. 남편 다섯이 있었지만 그녀는 갈증을 해결하지 못하였다. 지금 있는 남자도 남편이 아닌 부적절한 관계였다. 그가 주님을 만났을 때, 물동이를 버렸다. 그리고 외쳤다. 주님을 만났다고. 만족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고 그녀는 동네방네 외쳤다.
나는 더 이상 먹을 것을 위해 수고하는 자가 아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군으로서 주님의 명령에 따라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군사 됨을 외친다.
오늘 나의 손이 거룩하다. 죄를 씻는 마음으로 청소도구를 잡는다. 내 발걸음이 거룩이요. 나의 혀가 나의 말이 주님 나라를 위하여 사용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