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사도행전 9장 32-43절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온 나라를 두루 다니며 설교와 치유를 행합니다. 그는 룻다에서 중풍병자를 고쳤고
이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욥바에서 가난한 과부들을 위한
선행과 구제하는 사명을 감당하던 여제자 다비다를 죽음에서 살려냅니다.
처음에 저는 천국에 이미 들어간 다비다가 사명을 위해서 이 세상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 안쓰럽
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과 함께 한 짧은 순간의 체험을 통해서 그녀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며 다른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끌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는 주님이 그녀에게 그동안의 일을 모두 잊어버리는 은혜를 베풀어서 기억을
새롭게 하시고 죽음으로부터의 부활을 통해서 그녀가 하나님의 충실하고 착한 종임을 인정받는
사건이 되게 하셨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중풍병자의 경우는 다릅니다. 온전한 몸으로의 회복은 감사와 찬양을 불러일으키는 선물과도 같은
것입니다.
나의 경우는 어떻게 중풍병자가 되었고 어떻게 회복된 것일까요?
나는 어떻게 죽음으로부터 일으켜 세워졌을까요?
나는 어떻게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으로 다른 사람들의 회복을 도울 수 있었을까요?
누가 나를 도왔던 것일까요?
누가 다비야와 같은 더 깊은 수준의 믿음으로 나를 이끌어준, 내 인생을 위한 하나님의
도구였을까요?
오늘 다리를 접질려서 다시 다리를 절며 걸어 다녀야 했습니다.
지난달에 무릎을 다쳐서 뼈에 금이 갔었습니다. 비록 나의 부상은 가벼운 것이었고
중풍병자나 죽은 사람과 같이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을지라도 베드로가 와서
나를 고쳐준다면 크게 환영했을 것입니다.
나의 일상적인 죄들이 당장 나를 완전히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만들지는 않지만 그것이
인식하지 못하거나 고백하지 않은 상태로 쌓이게 되면 중풍병자나 시체와도 같이 결국 나를
완전히 마비시켜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할 것입니다.
새해가 되고나서 저의 습관에 대해서 자세히 관찰중입니다. 좋은 습관 두 가지는 책 읽는 것과
매일 운동하는 것이지만 또한 많은 나쁜 습관들이 있습니다.
나의 나쁜 습관들을 자세히 살펴보다가 그것들이 관찰하기가 아주 쉽기도 하고 또한 그것들이
죄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들을 나쁜 습관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습관이 아닌 죄인 것입니다.
나의 습관 중에서 죄의 속성을 가진 것 한 가지는 누군가에게 부정적인 응답의 농담을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긍정적이거나 최소한 진지한 대답을 할 것이라고 예상하기 때문에 내가 하는
농담의 방식과 타이밍에 그들은 재미있어하거나 때로는 당황하기도 합니다.
왜 그런 부정적인 농담을 하는지와 언제 그것을 하게 될지 사실 나도 모릅니다.
하지만 최근에 그것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크리스천답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기를 원합니다.
나의 이러한 죄의 속성을 가진 습관을 상황에 맞는 적절한 응답을 함으로써 상대방과 주변
사람들에게 존경심을 보여주는 것으로 바꾸려고 합니다.
습관인지도 몰랐던 오래된 것을 변화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 때문에 이것을
위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내가 지닌 또 다른 죄의 속성을 가진 습관은 처남을 향해 반감과 혐오감을 가지고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미소를 지으며 공손한 태도로 하루를 지내고 집에 돌아오는 순간 현관에 널 부러져있는
그의 신발들을 보면 걷어차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그럼에도 그가 집에서 무언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하지 않는 그를 보면 이번에는 그의 신발이
아닌 그를 걷어차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그와 식사를 할 때 그의 매너 없는 식탁예절과 입을 벌리고 음식을 씹는 모습을 보면 속이 다
울렁거립니다. 그가 화장실에서 내는 소리들도 참기 힘든 혐오감이 듭니다.
스스로 밥을 차려 먹거나 제 때에 낼 돈을 내지 않는 것에 대해서 저는 불만이 많음에도
그는 오히려 멋을 부리는 것에만 신경을 쓰고 누군가가 그에게 식사초대를 하거나 밥을
산다고 하면 한껏 차려입고 나가기 바쁩니다.
그의 모든 생활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물론 그의 행동이 아니라 나의 태도에 있습니다.
나의 태도는 나의 의지로 선택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가복음 4장 24절의 한 구절인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며“의 말씀을 마음속에 떠오르게 하심으로 저를 도와주셨습니다.
제가 처남을 정죄하는 똑같은 방식으로 하나님이 저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죄의 속성을 가진 이 악습을 대신하게 될 저의 습관은 처남과 반드시 변화되어야 할
나의 부정적인 태도를 고치기 위해서 매일 기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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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담임목사님께서 크리스천이 되기 위한 90%의 노력은 기도와 기다림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키워가려고 하는 처남을 향한 습관인 기도와 기다림인 것입니다.
그 기다림은 나의 부정적인 태도의 변화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주님! 죄의 속성을 가진 저의 습관들을 멈추고 그 자리에 당신의 생명과 말씀이 들어있는
좋은 습관들이 대신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끝까지 지켜나갈 수 있는 힘을 주시옵소서.
죄로 인해 나의 영이 마비되지 않게 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생명의 삶으로 회복시켜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