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23일 금요일
야고보서 2:1-13
“믿는 자의 바른 태도”
예수님을 야고보는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야고보서 2:1a
첫째는 우리의 주가 되신다. 말 그대로 ‘주인이시다.’는 고백이다. 둘째, ‘예수’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서 친히 지으신 이름이었다. 마태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풀이했다. 속죄 제물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셋째로 그리스도라고 하셨다. 기름 부은 받은 자라는 말씀이 되겠다. 구약에서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은 세 종류이다. 왕 그리고 선지자, 제사장 등이다.
이 모든 내용을 ‘영광의 주’라는 표현했다. 이 말은 다시 오실 예수님을 바라보는 간절함이 배어있다. 짧은 소개 가운데 너무도 많은 이야기가 함축되어 있다. 우리가 사랑하고 친애하는 예수님의 사역이 야고보의 짧은 글 안에 담겨져 있는 것이다.
야고보의 권면은 실제적이고 체험적이다. 세상의 기준으로 신분의 고하를 정하지 말라고 하신다. 하늘법정의 기준은 하나이다.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것이다. 최고의 법을 제시 하셨다.
이 말씀 안에서 평등이 실현된다. 복음 안에서 하나가 된다. 이 하나 됨을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하신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 중 하나가 불평등이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나누어진 사회는 언제나 불안이 잠재되어 있다. 배운 자와 못 배운 자가 차별 받는 사회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다.
다른 말이 필요 없다. 모든 사회를 하나로 통합하는 최고의 법을 명령하셨다. 이웃사랑의 기준을 제시하셨다. 자신의 몸을 돌보는 것처럼 이웃을 향하여 따뜻한 시선으로 가지라고 하셨다. 한 마디로 잘라 ‘하라’고 명령하셨다.
이 일을 위해서 몸소 실천하시기 위해서 이 땅을 방문하셨다. 바로 우리의 이웃이 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찾아오신 예수님이시다. 손수 발걸음을 옮기셨다. 낮고 낮은 이 땅에 오셨다. 이것이 은혜이다.
주님께서는 ‘돌격’을 외치시는 분이 아니시다. ‘나를 따르라’고 앞장서셨다. 이 땅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죄인들을 만나셨다. 병자들을 만나셨다. 그들을 친히 찾아 가셨다. 오는 자들을 한 번도 밀쳐내신 적이 없으셨다. 모든 편견을 허무셨다. 온 인류를 두 팔을 벌려 가슴에 품으셨다. 십자가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간음할 수 없다. 사랑하는데 어떻게 살인을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하는데 이웃의 것을 탐할 수 없다. 사랑하는데 이기적으로 호의호식할 수 없다. 나눔과 돌봄은 이 사랑에서 출발한다.
초대교회였다. 핍박으로 흩어진 열두 지파였다. 신앙 때문에 목숨을 건 자들 속에서도 차별이 엄연히 존재했다. 야고보서는 이처럼 부패한 인생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자기성찰의 고백이다.
이런 자들을 부르셨다. 사랑의 용광로에서 이 모든 것을 녹이셨다. 주 안에서 하나 되는 나라를 꿈꾸셨다. 하나님 나라이다.
그 이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담긴 사랑의 의미를 곱씹으면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