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살기가 등등했던 그의 모습이 밖에 서서 전단지를 나누어주며 전도를 하는
교회사람들만 보면 욕을 하고 종교를 강요 한다며 무시했던 나의 모습 같다.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비추니 사울이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라고 했다.
그는 그렇다면 땅에 엎드러진 자세로 주님의 음성을 들었을 것이다.
살기가 등등해서 예수 믿는 자들 앞에서 가슴 펴고 당당히 다녔을 그가
막상 예수님이 그와 만나주시는 사건, 즉 빛이 비추니
땅에 엎드러진 자세로 예수님의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끊임없는 외식과 물질, 가족우상, 교만 속에서 당당히 생활하던 나에게도
예수님께서 나를 만나시려 빛을 비추시는 사건이 닥치니
사울처럼 땅에 엎드러져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던 것 같다.
예수님은 그런 사울에게 만나주시고 가장 먼저 이름을 불러주신다. ‘사울아 사울아’
그리고 첫 마디가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였다.
가장 먼저 만나서 해주시는 말씀은 이름과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라고 하신 것이었다.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들을 뿐, 아무도 보지 못하였다고 한다.
사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있을 때 주변의 사람들은 소리만 들을 뿐이었다.
목사님께서 설교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천국은 엄마 손 잡고,
가족끼리 손잡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하셨다.
내가 예수님을 만나고 있을 때, 주변의 사람으로 같이 가던 사람인
아빠와 동생은 어쩌면 그 소리조차도 듣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빠와 동생에 대한 구원을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최근에 갑작스러운 사고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전수연 자매를 생각하면
나도, 우리 가족도 언제 이 세상을 떠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인데...
동생과 아빠가 구원받지 못한 채 이 세상을 떠나면 어떡하나...
무섭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새롭게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 같다.
오늘 본문은 사울이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먼저 예수님을 만나게 된 그는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예수님을 드디어 만나게 되었는데,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예수님을 만났다고 해서 세상이 더 좋게 변하고 바뀌는 것이 아니라
먼저 내 눈이 안 보이는 변화를 겪는 것 같다.
주변의 상황이 아닌 내가 변하는 경험을 먼저 하게 되는 것 같다.
아빠는 집을 나가고, 엄마의 집착이라는 여전한 상황 속에서
내가 그동안은 피해자라고 생각을 했지만, 나의 죄로 주변의 사람들이 수고하고 있음을
내가 깨닫고 내가 변화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사울은 눈이 안보이니 그동안 멀쩡히 내 힘으로 걸어다녔던 것부터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변화를 느끼는 상황 속에서 내 힘으로 멀쩡히 해오던 것이
내 힘으로 되지 않는 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왜 하필 눈을 멀게 하셨을까?
눈은 우리 감각기관 중 가장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는 기관이라고 한다.
그만큼 내가 나의 주변 상황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데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기관이기도 할 것이다.
예수님을 만난 사울의 인생에서 이제 그의 판단이 죽어지고
하나님의 판단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
잠시 그의 눈을 멀게 하심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했다고 한다.
보지 못했다라고 한 것을 보면 그것은 자신의 뜻이 아니었지만
먹고 마시지 아니했다고 한 것을 보면 그것은 자신의 의지였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주님의 명을 받은 아나니아를 만나 안수를 받고 말씀을 전해듣자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 졌다고 한다.
그가 변화하는 과정을 보며 좀 웃기지만 효소 체질개선이 떠올랐다.
효소를 이용한 체질개선은 체질을 바꾸기 위해서 장을 비우고,
며칠 간 절식을 하며 효소만 먹은 뒤
절식기가 지나면 회복식기라고 해서 충분한 기간 동안 정상적인 식사로 복귀하는 것이다.
사울은 이 세상 체질의 사람으로 독소와 노폐물이 가득해서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를 불쌍히 여기신 예수님은 이 세상 독으로 죽어가는 사울을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크신 뜻을 위해 그를 찾아가셨을 것 같다.
예수님의 음성을 들은 그는 눈이 멀게 되고, 사흘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했다고 했다.
그동안 먹었던 세상 것에 대한 판단도 하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다.
아마 사흘이라는 기간 동안 그는 예수님과의 만남이라는 효소를 통해
세상의 음식을 끊고 체질이 변화하는 과정을 겪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는 아나니아에게 세례를 받고 회복식기를 맞이해
이 세상의 독기가 빠지고 노폐물이 빠진 상태가 되어 다시 음식을 먹으며
새로운 하나님의 사람으로 강건하게 선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길거리에서 전도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비방하지 않겠습니다.
-아빠와 동생구원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