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22일 목요일
야고보서 1:19-27
“경건의 본질”
딱 잘라 말하셨다. 참 경건은 첫째 고아와 과부를 환난 중에 돌보는 것이다. 둘째로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라고 하셨다. 편지를 받은 자들의 처지를 생각한다면 오늘 야고보의 요청은 무리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저들은 예수 믿는 것 때문에 핍박 속에 있었고 고향을 등진 자들이었다. 우리가 과부와 고아와 같은 처지라고 반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환난 중에서도 내가 돌보아야할 이웃이 있다는 것이다. 나누는 일은 물질 이전에 마음이 먼저임을 가르치신다. 콩 한쪽이라도 나누는 삶, 사랑이 있는 이웃이 되라는 것이다.
경건한 자의 눈은 항상 낮은 곳을 향한다. 그곳에 아버지의 시선이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시선과 아버지의 마음이 만나는 곳이 구제의 현장이요 주님과 동행하는 자들이 걸어 가야할 마땅한 길이다. 오죽하면 창조주 하나님께서 고아와 과부의 아버지라고 자신을 소개하실까.
“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시편 68:5
참 경건의 리트머스 시험지는 이만 하면 경건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헛된 것이라고 지적하신다. 나팔 불지 말라는 말씀이다. 파격적인 단어를 사용하신다. 심지어 입에 재갈을 물리라고 하셨다. 이 행동은 포로 된 자들을 제어하는 방법이다. 말에 대하여 이처럼 강한 어조를 사용하시는 것은 말이 그만큼 공동체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 편지를 받는 자들의 처지는 그야말로 사면초가와도 같은 신세였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린 자들이었다. 그럼에도 말의 실수에 대해서 이처럼 언급하는 이유는 어제나 오늘이나 말에 의해서 공동체의 운명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참된 경건은 자기 혀를 재갈 물리는 것으로 시작해서 연약한 지체들을 돌봄과 나눔을 통해서 외적인 삶의 모습으로 완성된다고 할 수 있겠다.
또 하나 주의해서 들을 말씀은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 경건이라고 하셨다. 세상을 살면서 어찌 세속의 때가 묻지 않을 수 있을까? 그때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던 주님을 기억하라.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요한복음 13:8-10
더러워진 옷을 빨 듯, 세상에서 때 묻은 우리의 심령을 주님의 보혈로 씻는 일은 성도가 평생 추구해야할 일이다. 그리고 어떠한 환경에서도 교회가 포기하지 말아야 것은 연약한 자들 편에 서는 것이다. 비록 환난 가운데 있을 때에라도 저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는 것이 참된 경건이다. 오늘 나의 지갑의 일정부분이 연약한 지체들을 향하여 열려 있어야할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