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21일 수요일
야고보서 1:12-18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에베소서 1:12
“그가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야고보서 1:18
오늘 말씀을 요약하면 하나님은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는 분이시지 시험하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생명의 면류관을 상급정도로만 생각했다. 야고보서를 통해 생명의 면류관이 바로 영생인 것을 깨닫는다. 그 일을 위해서 해산의 수고를 하셨다고 하신다. 십자가이다.
이 땅에 죽음이 들어온 원인을 규명하신다. 시험의 원인이 욕심이라고 하셨다. 뿌리 깊은 죄의 근원을 밝히신다. 욕심은 가진 것에 대한 감사를 잃어버리게 하는 힘이 있다. 에덴동산의 모든 것을 주셨지만 주지 않은 것에 대한 탐심으로 인해서 실낙원의 아픔을 겪게 된다.
전도를 하다보면 교회생활 중에 낙심되었거나 성경에 대한 지식을 가진 사람들을 만난다. 흔히 이야기 하는 것 중 하나가,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라! 선악과를 제외한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에덴동산의 주인의 상징으로 그곳에 둔 선악과를 주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투정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에베소서 1:17b
야고보 선생은 ‘하나님은 회전하는 그림자가 없으시다.’고 정의한다. 실존하시지만 피조물의 영향을 받지 않으신다. 스스로 빛이시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신 분이시라고 했다.
변함이 없으시다는 또 다른 말은 하나님께서는 한 번도 나를 향한 시선을 거두신 적이 없으시다는 것이다. 내가 죄를 짓는 현장도 보고 계신다. 실패하고 낙망해서 어쩔 줄 모르는 나를 보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나를 변함없이 바라보고 계신다. 내 삶 가운데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린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란 바로 들린 등을 다시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다. 그곳에 변함없이 긍휼의 하나님께서 따뜻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실 것이다.
초대교회 박해로 인해서 고향을 등진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변하지 않으신다는 말은 크게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잃은 듯 했으나 변함없으신 하나님으로 인해 소망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끝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포기하실 수 없으시다. 오늘 나를 포기하실 수 없는 단 한 가지 이유는 나를 낳으신 아버지라는 이름 때문이시다.
“그가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에베소서 1:18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마태복음 1:21
‘자기 뜻’과 ‘자기 백성’이란 동일한 단어 속에 내 이름이 기록되었다. 생명책에 기록된 나의 이름을 은혜라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나를 낳으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 진한 하나님 아버지의 부성애를 가슴에 담으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