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이사에게 호소하노라.
1월 1일 서울 동서 댁에 갔다 오다가 접촉사고를 냈습니다.
상대방 차가 분명히 내 차선으로 들어와 사고를 내었는데 상대편 운전자가 ‘왜 차선을 바꿔서 자신의 차를 받았느냐’ 고 나에게 항변을 합니다.
그래서 아주머니 차가 내 차 쪽으로 와서 받았다고 하였더니 안 그렇다며 경찰을 부르고 보험회사를 불렀습니다.
다행히 그 사람의 차에 블랙박스가 있었고 블랙박스를 조회한 결과 상대편 차가 와서 내 차를 스치고 간 것이 판명이 되어 9:1로 하기로 하였습니다.
보험처리를 하려고 하니 상대편 차는 일류 정비소에 들어가서 상당한 비용이 나와서 약 130만 원 정도 나왔고 내차도 50만 원 정도 나와서 약 19만원을 보상하기로 하였습니다.
어떤 분이 9대 1이므로 내 차를 다 수리하여 주고 보험에서 100%를 하자는 의견이 있어 보험회사와 상의를 하였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며 결국에는 19만원을 내기로 하였습니다.
내 차는 작년에 사고를 접수한 경험이 있어 본인 부담이 20만 원 이하라서 내가 수리비를 감당하기로 하였습니다.
운행하다가 상대편이 외서 차를 받은 것도 불쾌한데 상대편은 고가로 수리를 하여 보험회사가 돈을 부담하였지만 나는 가만히 있다가 사고를 당하고 돈도 물은 이상한 형태가 불합리 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나도 상대방처럼 여기 저기 고칠 것을 다 고치다보면 더 많이 나왔을 터인데 돈이 얼마 안 되지만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들 마음속에 뿌리 박혀진 보험회사가 부담하니 내가 배상을 받을 것은 다 받겠다는 것을 확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회는 성숙한 사회가 아니고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는 약육강식의 동물세계를 연상하게 합니다.
<그가 나오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둘러서서 여러 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송사하되 능히 증명하지 못한지라.
바울이 변명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하니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하여 바울더러 묻되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
바울이 가로되 내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 당신도 잘 아시는 바에 내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나이다.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사죄를 범하였으면 죽기를 사양치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의 나를 송사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누구든지 나를 그들에게 내어 줄 수 없삽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호소하노라 한 대>(사도행전 7#12336;10)
바울을 송사한 유대인들은 죄를 찾았으나 그 죄를 입증하지 못하였습니다.
바울은 송사를 한 유대인들이 한 내용이 율법이나 성전이나 황제에게 대하여 자신이 범죄한 일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황제의 법정에서 재판을 받겠다고 하면서 유대인에게 잘못한 일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것을 죄로 꾸미고 바울을 옥에 가두었지만 증거를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자신이 황제 앞에서 재판을 받아야겠다고 주장을 합니다.
복음에 대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음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복음을 증거하기 위하여 복음 앞에 떳떳하고 담대하게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인 로마에서도 복음을 증거 할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이 위대한 사람으로 남게 된 것은 복음의 능력이었습니다.
이 위대한 복음이 있었기에 복음을 위하여 목숨까지도 내어 버릴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바울의 삶을 묵상하면서 참으로 많은 은혜가 되며 도전이 됨을 배우게 됩니다.
나 자신을 보면 한 없이 약하고 부족하지만 그래도 복음의 능력이 나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전능하신 주님! 나에게 힘과 지혜를 주셔서 복음을 담대하게 전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