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을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 이르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앞장서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던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꾸 예수님의 이름으로 가르치는 사도들이 싫고
점점 그 가르침이 예루살렘에 가득해질수록 자신들이 예수님을 못박았다는
사실 때문에 죄책감과 불안함을 겪었을 것 같다.
그런 이유에서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 돌리고자 함이로다’라고 이야기 한 것 같다.
하지만 사도들이 전한 말씀은 사망의 말씀이 아닌 생명의 말씀이었다.
그 말씀은 죄의 대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기 위함이었다.
나도 처음 말씀이 들리기 전에는
내 죄 때문인지도 모르고, 그리고 솔직히 들춰보기도 싫었기에
자꾸 죄를 부르짖고, 죄인이라고 말하는 교회가 불편하고 싫었고,
담임선생님의 전도를 처음 받을 때에도
온갖 가족의 죄, 다른 사람의 죄만 나누며 내가 피해자라고 주장했고
세상적이고 도덕적인 관점에서 지은 나의 죄가 생각나서 불편해했었다.
그런데 말씀이 들리며 어느 순간부터 내 죄가 보이기 시작하니
마음이 찔리고 사건이 해석되기 시작했다.
우리 집의 사건을 통해서 내게 오신 예수님은 나의 죄 값을 물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명의 말씀을 통해 내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며
죽어가던 나를 살리기 위해 오신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회개함과 죄 사함을 선물 받은 증인이다.
모든 상황과 환경에서 내가 내 죄를 보고 회개하고 가면 된다고 하셨는데,
아마 예루살렘의 많은 사람들은 생명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며 자신의 죄를 보았을 것 같다.
하지만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자신의 죄가 불편하기만 할뿐,
회개할 마음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게는 29절 사도들이 대답한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라는 말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무슨 일만 생기면 ‘자식은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성경에 써있어!’라고
말하는 우리엄마의 주제가가 떠오른다.
그렇지만 사도들의 말처럼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고,
가족을 객관화하고 분별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엄마를 객관화 하고 분별하지 못했기에 늘 엄마에게 잘못된 순종으로
엄마의 집착을 만들어주었고, 내게도 엄마를 이용해먹는 죄를 짓게 했다.
그 주제가는 내가 하나님이 아닌 사람의 말에 순종하면서 만들어 낸 주제가 인 것 같다.
자기 주장도 못하고 약해서 사람들 말에 오락가락 흔들리는 나이지만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묻고 순종하며 가고 싶다.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율법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
이 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선전하매 사람이 약 사백 명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져 없어졌고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크게 노하는 대제사장들을 가말리엘은 만류한다.
가말리엘은 율법교사로 성경의 지식도 갖추었고, 사람들의 존경까지 받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는 젠틀함까지 갖춘 것 같다.
게다가 그가 하는 말은 논리정연하고 설득력이 있고 맞는 말인 것 같다.
하지만 거기까지 인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그의 지식으로 대제사장들이 생명의 말씀을 막고 사도들을 핍박하는 것은
막았지만 자신들의 죄를 보고 회개하고 거듭나지는 못한 것 같다.
지식, 존경, 젠틀함, 겉으로 보이는 신앙이 있어도 거기까지 인 것 같다.
우리 아빠는 성당을 다녔고, 지식과 사람들의 존경, 젠틀함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아빠는 아직 거기까지인 것 같다.
말씀을 전하는 나에게 아빠는 세상적으로 균형잡힌 삶을 살아야 하며
세상에는 종교적인 방법 외에도 마음의 평화를 찾는 방법은 많다며
반론을 제기하고 끊임없이 이성적으로 이해하려하고 논리를 말씀하신다.
지식이 많고, 사람들에게 존경도 받으며 젠틀함까지 갖춘 사람이 회개하며
진정한 믿음으로 거듭나는 것은 힘든 일인 것 같다.
이제는 바람의 소문으로 사람들의 존경과 신임은 잃었을 아빠가
버려야 할 것은 버리고 부서져야 할 것은 부서져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새로 떠오르는 어떤 이론과 사상을 존경하고 따르다가도 어느샌가
흩어지기도 한다.
사람이 만든 사상과 이론은 절대적이며 영원불변할 수 없다.
하다못해 과학 이론도 계속해서 변화하고 거짓으로 밝혀지기도하고
지도자들이 사라지기도 한다.
언젠가 그 지도자와 무리들이 망하거나 없어지면 그 추종자들도 없어지곤 한다.
하지만 말씀은 영원하며 절대적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께로 났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이치도 그렇고, 세상이 돌아가는 법칙도 말씀에서 찾을 수 있는 것 같다.
매주 설교말씀을 들으며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모두 성경에 나온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했다고 한다.
사도들이 채찍질 받는 그 상황에서도 기뻐했던 것은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서 능욕 받는 일에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들이 긍정적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거나, 고난을 잘 이겨내는 기질을 타고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이 가족고난 속에서 평안을 누리고,
학교동기들이 우리 집안 이야기를 가지고 쑥덕쑥덕거리는 데에도 걱정하지 않고,
임용시험에 떨어졌음에도 조급해하지 않는 것을 보며
동생과 친구들은 내가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게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해~ 그게 좋은 거야! ’‘역시 너는 매사에 긍정적이구나’라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내가 고난 속에서 평안을 누리는 것은 말씀으로 고난을 해석 받았기 때문이었고,
우리 집안 이야기로 전도를 했을 때 소문이 나서 수치를 당할 때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한 일이기에 걱정하지 않았고 있어야할일이라고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 죄에 비해서 지금 겪는 환난이 경한 것임을 깨닫고
지금 임용에 떨어진 것은 하나님의 또 다른 내 인생계획이 있었음을 믿기 때문이었다.
내가 기뻐하고 이렇게 살아있는 것은 말씀의 힘이었다.
매번 이렇게 이야기를 해주어도 친구와 동생은 때로는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인정하지 않을 때도 있다.
앞으로도 내가 만난 하나님을 내 주변사람들에게 알려주고
그 기쁨과 평안을 함께 누리고 싶다.
-아빠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힘든 상황이 왔을 때, 남의 죄가 아닌 내 죄를 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