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10일 토요일
에베소서 4:17-24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으라.”
세상은 바다와 같다. 일순간 풍랑이 일면 모든 것을 뒤엎어버리는 바다 말이다. 그런 유혹의 바다에서 구습을 쫓아 살아가던 자들을 부르셨다. 구습이란 말 그대로 옛 습관이라는 말이다. 습관은 우리들을 옛날로 돌아가게 하는 흡인력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새사람을 입은 자인 것을 날마다 순간마다 점검할 필요가 있다. 매일 아침, 말씀의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유혹이 가득한 세상이다. 눈을 어디에 두어야할지 보암직도 하고 먹을 만큼 탐스럽게 보이는 곳이다. 곳곳에 복병처럼 성도들을 넘어뜨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런 사단의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깨어있는 것 외에 별다른 방도가 없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에베소서 4:22-24
구습을 대체할 새 습관은 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훈련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얻어진다. 훈련의 첫걸음은 회복된 신분에 대한 자각이다.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았다. 그래서 새사람이 되었다. 이것을 기억하라고 하신다. 이것은 개인에게 국한 된 것이 아니었다.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다는 것이다.
예수 안에서 이제는 하나가 아닌 연합군의 일원이 되었다는 말이다. 교회이다.
오합지졸 같은 인생들을 부르셨다. 하나님 나라의 용병으로 삼아주셨다. 나 같은 자를 십자가의 군병이라고 부르신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고 먼저 소금이라고 하셨다. 미완성인 자들을 완성된 자들로 부르신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세상은 여전히 유혹의 욕심이 가득한 곳이고 우리가 너무도 익숙하게 살아온 곳이기에 구습을 쫓기에 가장 적당한 온도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일순간의 방심을 허락해서는 안 됨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이 편지를 쓰고 있는 로마 감옥으로 돌아가 보자.
감옥이라는 자유가 억압된 환경에서 사도바울이 할 일은 제한적이었다. 사도바울은 환경을 탓하지 않았다. 3차에 걸친 목숨을 건 긴 여행을 하였던 그가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찾았다. 기도와 편지 쓰는 일이었다.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엡 1:16
사도바울의 기도는 일회성 기도가 아니었다. 그는 끊임없이 기도하였고 그 마음을 편지에 담았다. 이방인이었던 우리들을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일원이 되게 하시기 위해, 사도 바울은 편지를 쓰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최선이란 말은 사도바울에게 딱 맞는 말이다.
오늘도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삶을 원하신다.
세상길을 걸어가지만 땅 위에서 하늘 길을 걷는 자들이요, 무릎으로 땅 끝을 향하여 걸어가기기를 원하신다. 말씀묵상을 통해 삶의 거울을 보고,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는 성도의 길을 최선을 다해 걸어가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