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6일 화요일
에베소서 3:1-13
“함께”
며칠 째, 말씀 앞에만 서면 막막했다. 무슨 말인지 분간이 되질 않는다. 말씀이 없으셨다.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졌다. 그러나 초조하지 않았다. 멈추었지만 실망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아내가 배탈이 났다. 어제 저녁 먹은 것이 안 좋았나보다.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렸는데 무심한 남편은 쿨쿨 잠만 잤으니 미안한 마음에 ‘죽’ 집에 전화를 걸었다.
나는 그 죽 안 먹는다며 손사래를 친다.
주방에서 부스럭거려 가보니 죽을 쓰기 위해 냄비를 올려놓았다. 미안한 마음에 죽을 저었다. 이것밖에 내가 해줄 수 없다는 것이 많이 속상했다. 거울처럼 마주보고 산지 서른네 해, 참 세월도 무심하게 흘렀다. 아내를 처음 만난 날 떠날 줄 모르는 웃음이 인상적이었다. 어수선하게 살아온 내 인생에 기쁨이었다.
그랬던 아내의 얼굴이 오늘따라 힘겨워 보인다. 불을 줄여가며 20분을 저었다. 드디어 죽이 완성되었다. 아내는 그만 놔두라며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린다. 함께 살아온 세월을 계수해본다. 오늘 같은 날은 ‘사랑한다’는 말보다 ‘고맙다’는 말이 더 좋은 아침이다. 아내를 향해 말했다.
‘여보야! 우리 아프지 말자.’
아내를 향한 측은지심이 들어서였을까? 문득 사도바울의 일생이 나와 연결된 사랑인 것이 느껴졌다.
말씀 속에서 바울 사도를 만날 때마다 위대한 사도였다고만 생각했다. 나와는 다른 특별한 사람이라고 여겼다. 딱 거기까지였다. 그러나 오늘 내가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바울이 바로 내 영혼의 닻이었다는 사실이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예수를 믿고 서른여섯 해가 지나면서 관록이 붙은 신앙인이 되다보니 불신의 세월을 그만 잊고 말았다.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되 나 바울이 말하거니와” 에베소서 3:1
2,000년 전 배를 타고 때로는 걸어서 세 차례나 소아시아 지방을 향했던 바울의 발걸음이 나를 구원하기 위한 눈물겨운 수고였다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증언하기를 이방인을 위하여 감옥에 갇혔다고 고백한다. 그러고 보니 에베소교회는 이방인 교회였다.
이 혹독한 시련이 바로 나 때문이라고 외치고 있는 바울의 간절함이 절절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복음은 흐른다. 세월을 따라 흐르고 사람을 따라 흘러 내게로 왔다. 2,000년 전 바울의 땀방울이 오늘 나를 위한 수고였다. 이제야 깨닫게 되니 죄송함과 감사함과 기쁨이 하나가 된다.
바울을 사도로 부르신 주님께서 이제 구원의 길이 이방인들에게까지 열렸음을 알리신다. 아니 폭로하신다. 오라고 하신다.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나누자고 부르신다. 내 마음을 보라고 하신다. 이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기꺼이 수감생활을 감당하고 있다고 절절한 고백을 하고 있다.
더 나아가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하심이라고 했다.
이스라엘의 눈에는 이방인들이 지옥의 불쏘시개로 여겨졌다. 그러나 오늘 이방인을 향한 구원의 나팔을 분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게 하신다.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신다. 이것이 은혜이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에베소서 2:22
성전으로 지어져가는 우리들이란 말이다. 하나님 나라는 건물과 땅의 나라가 아니었다. 사람의 나라이다. 성도와 성도가 하나가 되는 나라, 하나님과 하나 되는 나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