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5일 월요일
에베소서 2:11-22
“그러므로 생각하라”
바울 사도는 오늘 ‘그러므로 생각하라’며 본문을 시작한다. ‘그러므로’는 앞 문장을 이어주는 징검다리 단어이다. 앞서 우리의 과거에 대해서 2절 ‘그 가운데서’ 행했다고 했다. 이 세상 풍조와 공중권세 잡은 자를 따랐다는 것이다. 3절에서도 ‘그 가운데서’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던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그 가운데서는 노는 물이 세상이었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믿음을 선물로 받은 자들의 변화된 모습을 똑같은 단어로 말씀하신다. 10절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고 예비하셨다는 것이다. 우리가 발을 디디고 사는 곳은 동일한 세상이지만 이제는 예수 안에서 살아가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11절 12절 연속해서 그 때라는 과거시제를 통해 나의 과거를 돌아보고 13절 ‘이제는’이라는 현재시제를 통해 어제와 오늘을 대비시킴으로서 주 안에서의 삶의 우월성에 대해서 변증하신다.
이어서 화평을 말씀하셨다. 이 일을 위해서 자신의 몸을 찢으셨다. 십자가였다. 주님은 화평을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위로는 하나님과 나 사이를 그리고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하나 되게 하셨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에베소서 2:14
나는 이 말씀 앞에서 양수리가 생각이 났다. 한 방울의 이슬이 모여 실핏줄처럼 돌고 돌아 실개천이 되고 이어지고 모아져 한줄기 강이 되니 북한강이 되고 남한강이 되었다. 그 두 ·강이 만나 두물머리가 된다. 한강이 하나 되어 흐르고 있다. 두 물줄기가 만났다고 해서 두물머리라고 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바다에 다다른다. 바다는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하나가 된다. 모든 것을 받아드리기 위해서 낮은 곳에 있다. 주님이 그러하셨다. 하늘 보좌를 버리고 가장 낮은 곳에 임하셨다.
나는 ‘예수 안에서란 말’이 바로 바다 같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을 받아들여서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막힌 담을 허셨다고 했다. 먼데 있는 우리들을 부르셨다고 했다. 이방인들이었다. 그리고 가까이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르신다. 그리고 그 둘을 하나 되게 하셨다. 저들이 볼 때에는 외인이요. 할례 받지 못한 인간들이었다. 그러나 당신의 육체로 허무셨다고 했다. 십자가이다.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남과 북이 오고가지 못한 채로 분단 70년을 맞았다. 총부리를 마주대한채로 둘로 나누어진 민족의 비극을 무엇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무력이 아닌 복음으로만 가능하다. 이 일을 위해 한국교회가 앞장서야만 한다.
복음은 민족을 넘어서는 것이다. 이념을 넘고 국경을 허무는 일이다.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막힌 담을 허신 것처럼 예수 십자가의 피가 분단 70년의 장벽을 허물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손에 손잡고 하나 되는 은혜를 위해 이 땅에 오셨다. 그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해 땅 끝에 서있는 북한 백성들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새해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