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귀한 교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씀을 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 설교는 성경을 풀어가는 설교가 아니고 주제를 가지고 하는 설교에 해당합니다.
이 말씀은 30여 년 전에 제게 주셨던 말씀이고 잘 아시는 말씀이며 오늘도 여러분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민수기 14:26#12336;30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이십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곧 나를 원망한 자의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민수기 14:26#12336;30)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여 가나안을 정복하려갈 때 각 지파에서 1명씩 12명의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그러데 돌아와서 정탐결과를 보고하는데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을 보았는데 보고가 달랐습니다.
10명은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이 견고하여 취할 수 없다고 하였으나 2명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그들은 우리들의 밥이라고 보고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10명의 보고를 받아들여서 마음이 심히 낙담되었습니다.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였더라. |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
그들은 죽었더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하여 그 말대로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고 싶었을까요? 살고 싶었지만 그들은 반대의 말이 나왔습니다.
우리도 가끔 이렇게 말을 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우리의 경우도 익숙한 말이 아닌가요?
하나님의 말씀이 소중하다는 것을 14장에 중간에 읽는 도중에 까먹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살아계심을 믿으십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류의 말을 합니다.
우리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가 없다.
우리는 가나안에 들어갈 거야
우리는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겠다.
10명은 바로 죽었습니다.
광야에서 태어난 20세 이상 중에서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라고 말한 갈렙과 여호수아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성경을 읽다가 이 말씀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는 말씀을 보고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 말씀을 대하는 것이 두렵게 생각되었으며 많이 놀라고 흥분이 되었습니다.
한 번도 들어보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제가 말을 잘 못 사용하였음을 회개하였으며 믿음의 말을 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말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보았습니다.
잠언에는 특히 말에 대한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왜 교회에서는 이렇게 말의 중요성에 대하여 안 가르쳐주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속상해 죽겠네 그러면 속이 상한 일로 채워집니다.
그때 30년 이후로 그대로 행하시더라라는 좋은 말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집사가 장사가 안 되니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제가 기도하여 준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이 집사님 망하게 해주셔요? 하였더니 다음부터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강령하게 만나서 지금은 교회 목사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높은 말이고 말은 보통 쓰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말씀과 말에 대하여서 하신 말씀이 같습니다.
우리가 다른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 같지만 같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말(씀)로 창조하셨습니다.
태초에 가라사대 그대로 되었습니다.
말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하나님을 닮은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도 말하시고 사람도 말하십니다.
말로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말은 창조적인 능력이 있습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에 언어가 파괴적이 되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회복시키려고 오셨습니다.
새 방언을 말한다고 하셨는데 같은 나라 말인데 달리 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언어가 달라졌습니다.
예수님도 세상에 오셔서 말로 사역을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7:50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4: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마가복음 5:41 그 아이의 손을 잡고 가라사대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심이라.>
하나님도 말씀으로 세상을 다스렸고 예수님도 말씀으로 사역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1: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산을 향하여 말할 때 말한 대로 믿고 말을 하면 그대로 하면 이루어주신다고 약속을 하여 주셨습니다.
이렇게 약속의 말씀이 성경에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사시니 안타갑지요.
성경을 통하여 말의 힘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 철학자들이 말의 힘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21세기에 말의 힘을 발견하였습니다.
말의 힘의 저자 이규호님은 이런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많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끝에 가서는 왜 이런 힘이 나왔는지 잘 모르다고 결론을 맺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역사하셨기 때문에 말에 힘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의 힘에 대하여 이미 말씀하고 있습니다.
늘 읽어도 잘 안 들오는 말씀 <잠언 18: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잠언 16:24 선한 말은 꿀 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잠언 18:20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
이렇게 말을 할 수 있는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가능합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선한 말이 사람을 살립니다.
말이 하루를 순종하게 하심을 믿습니까?
우리의 세포는 말한 그대로 배열이 되고 움직입니다.
말한 그대로 우리의 몸이 재배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가 너에게 말을 주었다. 이 말을 사용하라고 말입니다.
<야고보서 1: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원양어선도 핵 잠수함도 선장이 키로 움직입니다.
인생의 키가 머리가 아니고 말입니다.
좋은 날 보기를 원하시면 핸들을 좋은 쪽으로 움직이십시오.
벽에다 똥칠을 하며 산다고 말을 할 것이 아니라 나의 노년을 명품으로 가꾸어 가지 않겠습니까?
<이사야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하는 대로 되었습니다.
자녀들도 좋은 방향으로 말들을 인도하시기 바랍니다.
말이 거친 사람은 인생도 거치는 것을 봅니다.
우리말에도 말이 씨가 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살고 있으며 믿음의 말을 하여야 합니다.
<히브리서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믿음은 바라는 것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실상은 싹이 노랬지만 하나님이 되고 싶은 5만 명을 먹여 살리는 사람이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에 대하여 비평이 많이 있지만 그래도 믿음의 사람들은 희망, 소망, 부흥을 이야기 하여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번제로 드릴 양은 하나님이 준비하셨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대로 되어졌습니다.
우리도 이왕 말을 할 바에는 사랑도 많고,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믿음의 말을 합시다.
바라는 대로 말을 해 줍시다.
비전을 한국말로 옮기려면 좀 어렵습니다.
꿈이라고 부르자니 그렇고 저는 뻥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거룩한 뻥 그것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말입니다.
우리 모두 거룩한 말을 하여 사람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는 사람이 되어 봅시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