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라이 이미지는 잊어주세요
<사도행전 2:37~47>
오늘 큐티를 하는 동안.....
어제 저의 큐티나눔 때문에 또 한번 술렁거림의 파도가 일어난 것 같고
제가 또 공동체에 분란을 일으키는 것은 아닌지.....
‘찔림’ 까지는 아니어도 계속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제 변명만 늘어놓은 것은 아닌지.....
마음이 아픕니다.
성령충만한 교회의 필수요소는
<가르침, 사랑의 교제, 예배, 전도>라고 하시는데.....
저는 사람과의 ‘사랑의 교제’에
평생토록 목말랐고...... 그리워하였습니다.
어려서 예수님의 사랑을 받다가
갑자기 이방인의 땅에 내동댕이쳐졌습니다.
열아홉 나이에 만난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5~6 년이 지난 후 다시 만나자
놓지 않고 따라다니다가 마침내 결혼할 수 있었습니다.
그 사람을 너무나 사랑한다고 생각하였으나
주님께 돌아와 깨달은 것은....
예수님의 사랑을 잃어버린 외로움을
인간에게서 구한 육신의 정욕이었습니다.
일년 간 시집살이를 하다가 아이가 생겨서 서울로 분가하였습니다.
아이가 십 오 개월 된 어느날
그 사람은 떠나가 버리고.....
혼자 아이를 키우면서도
아이 아빠가 승려라는 사실을 들킬까봐 전전긍긍하였습니다.
그 사실을 왜 그렇게 창피하게 여겼는지.....
대대로 믿는 집안에서 자란 가치관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스스로 사람들과 벽을 쌓았습니다.
친구들도 모두 끊어버렸습니다.
아이 아빠에게만 집착하고..... 찾아서 데려오면
버리고 도망치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상처와 분노가 쌓여갔으나
누구에게도 털어놓으려 하지 않고
아무도 묻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친정 가족들도 저를 창피해하며 경원하였기에
거리를 두고 멀리하였습니다.
삼십년 동안.....
고립무원의 세월을 살았습니다.
우리들 공동체는
그런 저에게..... 별세계였습니다.
<목장의 교제와 나눔>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장편소설같은 저의 기구한 사연을 오픈하게 되기까지
어제의 나눔처럼 시간이 걸렸으나
한번 입이 열리자
오십 여년 못한 말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제가 이렇게 말이 많은 사람인지.....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초대교회같은 공동체에 붙여주신 은혜가 너무 컸습니다
저에게 선물하신 성령의 불이 너무 뜨거웠습니다.
그래서..... 정말 패역하고 이상한 괴물이었던 제가
9년 동안 조금씩 변화되고.....
참사람이 되어갑니다.
그 은혜 안에서 저 혼자 둥둥 떠다니느라
다른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평가하고 말을 하는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저를 보호하시는 성령께서 차단해 주신 것 같습니다.
질서가 엄격한 공동체인지라
제 앞에서 대놓고 뭐라 말하지는 않지만
미묘한 표정과 경원하는 눈빛으로 선을 그으며 저를 피하는 신도들....
심지어 어느 부교역자님의 퉁명스런 말투와 눈빛을 통해......
제가 이 공동체에서도 미운오리새끼인 것을
아무리 무딘 사람이지만..... 모르지는 않았습니다.
아무도 먼저 전화해주는 지체도 없었고
같이 밥 먹자고 먼저 권하는 사람도 없는..... 현실이
제가 얼마나 괴팍한 성정인지
그동안 얼마나 잘못 살았는지.......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회개하도록
모두 수고하시는 것이기에
원망할 수도 없었습니다.
모든 수근거림과 눈빛을 감수하도록
성령께서 감동시키시고
억지로 붙들어주셨습니다.
목자로서 첫 목장을 섬기는 동안
쎄~한 분위기와
웃지 않는 굳은 표정으로 처방에 반발하는 지체들이었지만....
목장이 끝날 즈음이 되자
처음에는 <고난이 축복이다>의 의미를 전혀 모르겠다고 울기만 하던 지체가
이제는 그 의미를 조금 알겠노라고.....
힘들어도 날마다 큐티하며 주님께 나아가겠노라고.....
기뻐하며 동생을 전도하여 등록시키시는....
성령의 열매를 맺어주셨습니다.
실망하지 말고
지치지 말고
포기하지 말라고.....
주시는 주님의 은혜임에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사람과의 관계가 가장 어렵고 안 되는..... 패역했던 저입니다.
그러나..... 예수씨가 있는 저입니다.
정말 베드로처럼 단순무식 경솔한 성정이지만
다윗처럼 은혜와 은총을 받는 저입니다.
부탁드립니다.
예전의 저의 또라이 이미지는 잊어주세요.....
새로워진 원혜영을 보아주세요......
붙어있는 시간의 흐름 따라 사람이 변화되는 공동체에서
선입견은 또 하나의 죄악이 아닐까요?......
송구영신 예배 때 담임 목사님의 축복의 말씀대로
앞으로 죽는 날까지 <관계의 복>을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티끌과 재를 덮어쓴 죄인의 자세를 지켜 스스로 거두어들이며
허리를 동이고 걸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