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29일 월요일
신명기 33:6-25
“온 누리에 비추는 하나님의 은혜”
아침이면 태양이 떠오른다. 온 누리에 비추는 빛처럼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복을 빌고 있다. 그들이 등을 돌리지만 않는다면 그 빛은 그들에게 영원히 비출 것이다. 모세의 복은 왕이신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였다.
“여수룬에 왕이 있었으니 곧 백성의 수령이 모이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함께 한 때에로다.” 신명기 33:5
열두지파의 복은 이미 주어진 것이다. 그것이 내 것이 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바로 서는 것이다. 말씀에 따라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는 것이 복 받는 비결이다. 그 복은 어부지리일 수가 없다. 온 누리에 미치는 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땀흘려야하고 싸워야한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이 하나있다. 그 모든 일에 앞장서 계신 분이 있다는 점이다. 그분을 바라보는 것이 믿음이다.
좁은 길이라고 했다. 찾는 이가 적은 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문득 외로울 때가 있다. 혼자라고 생각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 내 손을 보라. 나의 손을 꼭 잡고 계신 주님을 볼 수만 있다면 그것이 바로 행복인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 내 손에 포개신 손바닥에서 못자국을 발견한다면 그것이 은혜이다. 그러므로 그분을 따라가는 길을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결코 외로운 길도 아니다. 주님과 함께 손잡고 걸어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열두지파의 복은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었다. 레위 지파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열 한 지파가 있어야만 하는 것처럼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나라가 바로 하나님 나라이다.
요셉의 복을 말씀하시면서 5절에 걸쳐 자세하고 비중 있게 빌고 있다. 요셉을 추억한다. 그는 꿈꾸는 자였다. 채색 옷을 입는 귀공자에서 애굽의 노예로 팔려가는 모진 시련을 겪게 된다. 그를 판 자들이 바로 자신의 형제들이었기에 그의 심적 고통은 더욱 더 컸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어느 곳에 있던지 하나님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던 꿈이 그를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를 따라 다니던 수식어가 있었는데. 바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다고 했다. 그래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었다고 했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으나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았다. 아니 하나님께서 그의 손을 놓지 않으셨다. 그럼에도 그의 일생은 굴곡진 삶이었다. 노예에서 시위대장 보디발의 가정 총무가 된다. 보디발의 부인에게 모함을 받아 그나마 숨 쉴 수 있었던 가정총무에서 죄수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도 성실함을 인정받아 간수의 일을 대행하며 수년의 세월이 흘렀다.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밑바닥까지 떨어진 것이다. 그곳에서 만난 왕의 관원들을 통해 다시 한 번 재기할 수 있는 기회가 온 듯했으나 다시 속절없는 기다림이 계속 되었다. 그러나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그는 기다림의 의미를 말미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내가 팔려온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창세기 50:20
사도바울의 고백과 많이 닮아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린도전서 15:10
오늘 복을 한 마디로 요약해보면 ‘은혜’란 말이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다고 고백한다. 좁은 길은 바로 은혜의 길이다. 요셉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께서 임마누엘이 되셔서 나와 함께 하신다. 고로 나는 형통한 자임을 명심하고 하룻길을 걸어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