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279; 최근 한계를 느껴 정신과를 다녀왔는데 감정이 막혀있다며 표현을 하라는 처방을 받았습니다. 월요일 ‘욥의 항변’이라는 제목의 큐티본문를 보자마자 나도 하나님께 표현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제까지 하나님께도 항변이라는 반항을 해본적이 없었습니다. 항변한다는 것은 또 하나의 죄를 짓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제가 지난날 하나님을 아침저녁으로 얼마나 간절히 찾았는지 하나님이 아십니다. 아침이면 눈뜨자마자 하나님을 생각했고 예배를 열심히 드렸지만 기도할 때마다 답답함을 느꼈고 깜깜한 우주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었으며 하나님과 나 사이에 높은 담벼락이 가로막고 있어서 하나님께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그 담벼락 앞에서 펑펑 운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왜 그러셨어요?
이렇게 기도하고 출근을 하였고 퇴근시간이 되기까지 틈틈이 큐티책을 봤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답답하여 ‘상처가 별이 되어’를 펴서 읽었고 그 내용 중에 ‘큐티 할 때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내가 죄인임을 고백하라’는 구절이 눈에 들어와 그렇게 기도를 하고나서 다시 큐티책을 폈습니다.
‘만일 내가 내 소망을 금에다 두고 순금에게 너는 내 의뢰하는 바라 하였다면’
나는 소망을 어디에 두었지? 를 생각해보니 남편에게 두고 있었던 것이 생각이 났습니다. 남편의 외도가 드러난 후 저는 세상 살 소망을 다 잃은 심정이었고 그런 생각을 하는 동시에 내 소망이 예수님이 아닌 남편에게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그리하였으면 위에 계신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리라’
나는 하나님을 찾고 찾았다고 한 그것이 하나님을 속이는 것임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소망을 남편에게 두고 살면서 바라는 욕심이 채워지지 않음에 하나님께 나아간 것이지 진정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닌 것입니다.
나만 스스로 속았지 하나님은 속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그가 죽기를 구하는 말로 그의 생명을 저주하여 내 입에 범죄하지 아니하였노라’,
‘큰 무리와 여러 종족의 수모가 두려워서 대문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잠잠하였던가’
외도하고도 뻔뻔한 남편이 죽기를 수없이 바랬고, 남편의 언행이 창피했고 이웃과 친척들로부터 받을 수치가 두려워서 문자적으로도 대문 밖으로 나가지 못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저의 죄목을 구체적으로 밝혀 주셨습니다.
‘밀 대신에 가시나무가 나고 보리 대신에 독보리가 나는 것이 마땅하니라’
드라이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만큼 감정이 닫혔고 가시나무같이 메말랐습니다. 또한 남편에 대한 분노로 마음속에는 독이 가득 찼습니다.
저의 죄로 인해 이러한 결과는 마땅하다고 하십니다.
말로 표현하지 않았던 하나님께 대한 섭섭함을 토해내자 하나님은 너무나 기다렸다는 듯이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가까이 계심과 신실하심이 느껴져서 신비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하나님 왜요? 왜 저는 어린시절에 불행했나요?’ 하며 뒤늦은 사춘기 반항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나의 연약함과 약점들에 대해 ’이것이 타고난 성품인가?, 상처로 인해 만들어진 것인가?, 고쳐야 하는 것인가? 고쳐질 수 있는 것인가?’ 하며 광명으로 가는 길을 스스로 찾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찢는 회개에 이르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고 우울해 하는 것이 있고 늘 은혜에 목말라합니다.
‘누가 사람 없는 땅에, 사람 없는 광야에 비를 내리며 황무하고 황폐한 토지를 흡족하게 하여 연한 풀이 돋아나게 하였느냐 비에게 아비가 있느냐 이슬방울은 누가 낳았느냐...’
오늘 이 말씀은 하나님이 제게 짐을 덜어주시는 말씀인것 같습니다. 주제파악이 안되는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안되는 것에 대해 스스로를 정죄하지 않기를 다짐합니다. 하나님이 하실 일을 잠잠히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