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어제 크리스마스 예배를 보는 도중 할렐루야 합창을 들었습니다.
가슴 속에서 뜨거운 것이 솟아오름을 억제하기가 힘이 들었고 입가에는 눈물이 솟아올랐습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나에게 성가대를 통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천산의 찬양을 들려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내가 세상에서 주님을 찬양하게 될 노래가 할렐루야이며 그 노래의 결국은 아멘입니다.
다시 한 번 크게 불러봅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 하니라.
저희가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녀가며 이방인들의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사도행전 15:1#12336;3)
요즈음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복음에 따른 제약들을 많이 말하고 있습니다.
술을 먹으면 안 된다느니, 절을 하면 안 된다느니 등 여러 가지 말을 하곤 합니다.
이스라엘 당시에는 할례를 받아야 거룩한 이스라엘 백성의 무리에 들어가게 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고 그렇게 가르치는데 다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신앙에 권위를 가진 예루살렘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서 이 일이 맞는지 틀린지를 판단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뒤에 나오지만 베드로가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마음을 아시는 주님께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을 주셔서 그들을 인정하셨으며 그들을 차별을 않으시고 믿음으로 그들을 깨끗하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별된 이스라엘 민족뿐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주의 복음을 듣고 영접하는 자는 다 나오라고 초청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어떤 제약을 둔 것은 그 방법으로 믿어야만 이 믿음의 길을 잘 갈 수 있다고 생각되어지지만 제약 자체가 인간의 지식과 경험으로 만든 것이므로 그것을 행하여야 만 된다는 것을 고집하지는 말아야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복음을 전하는 일이고 방법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수일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니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한가지로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녀가며 교회들을 굳게 하니라.>(36#12336;41)
바울과 바나바가 복음을 전하러 가는데 요한을 데리고 가는 문제로 다투게 되고 서로 갈라져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결국은 수리아와 길리기아의 교회를 굳게 세우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복음의 역사는 우리 인간들의 생각을 뛰어 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결국에는 성령께서 우리를 통하여 하시는 일입니다. 할렐루야!
복음을 전하려는 우리의 어떠한 노력도 성령께서 기쁘게 받아주시리라 믿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