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26일 금요일
신명기 32:45-52
“모든 말씀을 온 이스라엘에게”
바산 옥과의 전쟁이 끝난 후, 승전의 여운이 채 가시기 전에 시작된 강론이었다. 장장 수개월에 걸쳐 율법이 가르쳐졌다. 모든 말씀이라고 했다. 남녀노소를 막론한 온 이스라엘에게 들려졌다. 이어서 그들의 입에서 떠나지 않도록 노래를 지어 부르게 했다.
“바로 그날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신명기 32:48
모세의 설교가 끝난 직후였다. 바로 그날, 느보 산에 함께 오르셨다. 가나안 땅을 바라보게 하신 후, 최후의 판결문처럼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신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모세만큼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냉정하게 선을 그으신다.
‘너는 안돼!’
그 이유는 하나였다. 므리바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지 못한 일을 끄집어 내셨다.
므리바에서의 추억은 이러했다.
물이 없었다. 이스라엘 백성의 십팔번 원망이 흘러 나왔다. 이곳까지 인도하여 목말라 죽게 하느냐며 따지며 대들었다. 그들의 원망에 다급하게 모세는 기도한다. 하나님께서는 반석을 향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다.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한 모세는 반석을 향하여 ‘물을 내라’고 명령 하셨는데 반석을 두 번이나 치고 만다.
작은 차이였다. 사람들의 눈에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이라도 변개할 수 없음을 분명하게 하신 것이다.
불순종의 결과가 이처럼 냉정했다. 본보기였다. 一罰百戒(일벌백계)라는 표현이 맞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말씀이 곧 생명인 것을 가르치기 위한 충격요법이었다. 모세를 죽여서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할 생명의 선을 정하신 것이다.
주인공이 죽었지만 드라마는 계속 되어야 했다.
율법의 대표자인 모세가 죽고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은 율법으로는 구원 받을 수 없음을 예표하고 있다. 그랬다. 사도바울은 율법은 죄인임을 알려주는 몽학선생이라고 했다.
또 다른 율법의 대표자였던 니고데모란 사람이 있었다. 그에게는 율법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빈 공간이 있었다. 그 갈증을 채우기 위해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 왔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4-16
니고데모에게 들려주신 말씀이었다. 불뱀 사건이 바로 십자가에 달리실 자신을 상징한다고 하셨다. 불뱀에 물려 죽어가던 자들이 진에 세워진 놋뱀을 보면 살아난 것처럼 인자를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신다고 선언하신다. 복음이었다. 이것이 은혜이다.
모세의 율법을 해결하시기 위해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야했다.
그리고 기억할 것은 이 하나님 나라의 드라마는 오늘도 현재진행형이란 점이다.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다. 믿는 자들에게 사명을 맡기신 것이다.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