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19일 금요일
신명기 32:15-25
“절망의 땅에서 부르는 희망의 노래”
이스라엘의 실패는 옛일을 잊어버린데 있다. 힘들게 살 때는 몰랐다. 옆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먹고 살만하니 이웃세상이 눈에 들어왔다. 아담의 눈에 들어온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했다.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했던 선악과처럼 다른 세상이 보였다.
망각의 덫에 걸린 것이다.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긴다.’는 말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꼭 그랬다. 눈에 보이는 세상이 좋아보였다. 군대 간 애인을 버리고 신발 거꾸로 신은 여자 같았다. 지난 날 아름다웠던 사랑보다 현실의 공허함을 달래줄 또 다른 사람을 만난 여인과도 같았다. 하나님의 짝사랑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여수룬이 기름지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비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업신여겼도다.” 신명기 32:15
헌신짝처럼 버렸다고 하셨다. 발로 찼다고 하신다. 등 따습고 먹고 살만하니까 하나님을 잊어버린 이스라엘 백성이었다. 내 자신이 그러했다. 감사 대신 불평이 어느새 입술을 점령했다.
깊은 상처를 입으셨다.
‘여수룬아!’
이스라엘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다정한 연인을 부를 때 쓰던 애칭이었다. 그토록 사랑했는데 배신에 마음이 찢겨지셨다. 내가 다시는 너를 보지 않겠노라며 얼굴을 감추신다고 했다. 그러나 여수룬이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마음은 그들이 바로 여수룬으로 회복을 기대하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래를 부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기를 원하셨다.
이 노래가 처음 불러졌을 때, 그들은 아직 첫걸음도 떼지 않았다. 넘어질 것을 알고 계셨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시작과 실패는 불가분의 관계였다. 노래가 되었다. 그들이 흥얼거리면서 내뱉는 노래 속에는 슬픔이 배어있었다. 힘들고 지쳐있을 때, 비로소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얼굴을 감춘 것이 아니었다. 내가 외면한 것이다. 그리고 세상을 향하여 달음질하였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할 엄청난 시험을 적나라하게 이야기 하신다. 경고를 날리셨다. 넘어졌을 때 그때가 바로 회복의 시작임을 일러주신다. 그들을 위하여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기다림이셨다.
그렇다. 오늘 내가 잊지 않은 노래가 내 입술에 있다면 희망이 있는 것이다. 절망 중에 부르는 노래이다. 하나님을 떠나 마음대로 살던 내가 시험 중에 깨닫는 노래이다. 돌아갈 곳이 있는 나그네는 행복하다. 갈 곳이 있는 인생이 되기 위해 오늘도 주님과 함께 부르는 노래이다. 영원히 잊지 않아야할 하나님 나라이다. 행복의 나라로 걸어가는 행복한 오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