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후가 말하여 이르되
지혜 있는 자들아 내 말을 들으며 지식 있는 자들아 내게 귀를 기울이라
입이 음식물의 맛을 분별함 같이 귀가 말을 분별하나니
우리가 정의를 가려내고 무엇이 선한가 우리끼리 알아보자
-엘리후는 지혜 있는 자들과 지식 있는 자들아 내 말을 들어보라라고 한다.
입이 맛을 분별하는 것처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귀가 말을 분별하기에
우리끼리 정의와 선을 가려내고 알아보자고 한다.
우리끼리, 인간들끼리 말이다.
자신에게 지식과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들끼리
정의와 선을 논하는 것이 가능할까.
어떤 사건을 보는데에는 사람마다 수많은 관점이 존재하고
그에 따라 각자가 주장하는 선과 정의가 존재하고,
그래서 어떤 때에는 딜레마가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끼리 선과 정의를 논하는 것은 의미없는 일일 것이다.
오로지 선과 정의는 하나님의 관점에서만 논할 수 있다.
아빠가 바람을 피우고 집을 나가고, 엄마는 자신의 기분대로 아이들을 대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의 관점에서 이것이 과연 선일까? 정의일까?
아빠의 입장에서, 엄마의 입장에서 그리고 아이의 입장에서 서로 주장하는 선과 정의는
다를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건과 행위의 정의와 선은 하나님만이 결정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문제를 인권도, 그 무엇도 아닌 영혼구원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영혼구원은 하나님의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영혼구원의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우리집에 벌어진 모든 사건들은 정의와 선이
이루어진 사건이다.
욥과 친구들의 계속되었던 언쟁들도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정의와 선을 가렸기 때문에 계속 된 것이었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해석해 본다면 일치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엘리후가 자신의 관점에서 정의와 선을 판단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관점을 대변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하는 것 같다.
욥이 말하기를 내가 의로우나 하나님이 내 의를 부인하셨고
내가 정당함에도 거짓말쟁이라 하였고 나는 허물이 없으나 화살로 상처를 입었노라 하니
어떤 사람이 욥과 같으랴 욥이 비방하기를 물마시듯 하며
악한 일을 하는 자들과 한패가 되어 악인과 함께 다니면서
이르기를 사람이 하나님을 기뻐하나 무익하다 하는구나
-엘리후는 욥의 잘못을 이야기한다.
욥 또한 정의와 선을 자신의 관점에서 사건을 판단했다.
내가 의로우나 하나님께서 의를 부인하셨고,
나의 정당함에 거짓말쟁이라 하셨고 나를 화살로 상처입히셨다고 했다.
사건의 중심에 놓인 욥 자신의 입장에서 선과 정의를 가렸다.
내 잘못이 없는데 하나님은 정의롭지 못하셨다라고.
그러나 엘리후는 하나님의 관점을 취하여서
욥이 하나님을 기뻐하다 했으나 무익하다 하였다고
욥의 부족한 점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므로 너희 총명한 자들 아 내 말을 들으라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결코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의 행위를 따라 갚으사 각각 그의 행위대로 받게 하시나니
진실로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시느니라
누가 땅을 그에게 맡겼느냐 누가 온 세상을 그에게 맡겼느냐
그가 만일 뜻을 정하시고 그의 영과 목숨을 거두실진대
모든 육체가 다 함께 죽으며 사람은 흙으로 돌아가리라
-그러므로 엘리후는 너희 총명한 자들 즉, 하나님이 아닌 자신의 관점에서 선과 정의를 가려내고 분별하는 자들에게 너희의 관점에서 떠나라고 이야기 하는 것 같다.
그는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아니하시며 불의하지 아니하신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관점에서 사람의 행위를 보시고 따라 갚으사 그의 행위대로 주신다.
우리의 관점에서 우리의 행위를 판단하고 그에따라 하나님께서 갚아주시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땅과 세상, 목숨을 맡기신 것도 하나님이시며,
맡기신 데에는 뜻이 있고, 스스로 있으신 분의 선과 정의로 이루어진 것이다.
-사건이 생길 때, 영혼구원의 시각으로 생각하겠습니다.
-나의 콤플렉스도 맡기신 데에는 뜻이 있음을 믿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