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15일 월요일
신명기 31:14-23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이 노래를 써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향하여 출발을 앞두고 있었다. 정권이 바뀌고 이전세대와의 완전한 종식을 선언할 즈음이었다. 한껏 꿈에 부풀어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뜻밖의 말씀을 하신다. 가나안 땅에서 벌어질 음란에 대한 경고였다. 찬물을 끼얹는 하나님의 이 말씀은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나의 삶을 조금만 돌아보아도 금새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주님을 만나던 날, 나는 울던 새들이 노래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배에서 강같이 흐르는 생수에 내 인생을 짓눌렀던 갈증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감격에 취해서 어느 곳에서든지 예배가 되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하나님이 계시냐고 묻고 또 물었다. 예수님이 좋으신 분이라고 아니 생명이라고 외쳤다. 오른 뺨을 때리면 왼 뼘을 돌려대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어느새 관록이 붙은 내 신앙생활은 세상과 타협하기 시작했고 하나님과 세상을 번갈아가며 섬기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패를 통해 나의 불충함을 고발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실패를 이미 알고 계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부르셨다. 이것이 은혜이다. 그토록 같이 있고 싶어 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의 별명이 임마누엘이시다. 자신을 떠난 백성들을 향하여 얼굴을 돌리신다고 하신다. 외면을 할지언정 이별은 아니라고 하신다. 고개를 돌리셨다. 차마 이스라엘 백성들의 악행을 보실 수가 없으셨다. 그럼에도 잊지 않으신다. 잊을 수가 없으셨다. 하나님의 짝사랑은 계속된다. 노래를 부르게 하셨다. 하나님을 떠나 질곡의 삶을 살아갈 때, 그들의 입술에 흥얼거렸던 노래였다. 하나님과의 만남과 사랑을 노래했다.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으로 힘든 노동을 하였던 선조들의 입에도 노래가 있었다. 아리랑은 노역에 시달렸던 사람들에게 희망이었고 시름을 달래주었다. 6,25때 참전했던 외국병사들이 65년이 지났음에도 아리랑을 다시 부르는 노병의 모습 속에서 노래가 주는 힘을 다시 생각해본다.
노래를 가르치게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허다한 재앙과 환난이 그들에게 닥칠 때, 부르는 노래였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잊었던 하나님의 얼굴을 다시 돌아보게 하셨다. 민족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노래였다. 첫사랑을 추억하듯이 돌아보게 하셨다. 그리고 자신들의 어긋난 길을 깨닫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나의 삶을 보고 계신다. 외면하신 듯 보이지만 하나님의 진심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이시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 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누가복음 15:20
집 나간 탕자를 기다리는 애비의 심정이었다. 아버지는 아침에 일어나 동구 밖을 쳐다보는 것이 일이었다. 이제나 저제나 다시 돌아올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고개를 숙인 행색이 남루한 아들이었다. 거리가 멀었지만 그의 걸음걸이만 보고도 아버지는 한 눈에 그가 자신의 아들인 것을 알아보았다. 달려갔다.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다. 이것이 사랑이다. 이것이 핏줄이다.
오늘 아침 내가 부르는 노래는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이다. 바다를 먹물 삼고 하늘을 두루마리 삼아도 다 기록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