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 눈과 약속하였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
그리하면 위에 계신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분깃이 무엇이겠으며 높은 곳의 전능자께서 주시는 기업이 무엇이겠느냐 불의한 자에게는 환난이 아니겠느냐 행악자에게는 불행이 아니겠느냐 그가 내 길을 살피지 아니하시느냐 내 걸음을 다 세지 아니하시느냐 만일 내가 허위와 함께 동행하고 내 발이 속임수에 빨랐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공평한 저울에 달아보시고 그가 나의 온전함을 아시기를 바라노라 만일 내 걸음이 길에서 떠났거나 내 마음이 내 눈을 따랐거나 내 손에 더러운 것이 묻었다면 내가 심은 것을 타인이 먹으며 나의 소출이 뿌리째 뽑히기를 바라노라
-불의한 자에게 늘 환난이 있는 것도 아니며,
행악자에게 불행이 곧바로 닥치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길을 살피시고 우리의 걸음을 다 보고계신다.
만일 내 마음이 여인에게 유혹되어 이웃의 문을 엿보아 문에서 숨어 기다렸다면
내 아내가 타인의 맷돌을 돌리며 타인과 더불어 동침하기를 바라노라
그것은 참으로 음란한 일이니 재판에 회부할 죄악이요
멸망하도록 사르는 불이니 나의 모든 소출을 뿌리째 뽑기를 바라노라
만일 남종이나 여종이 나와 더불어 쟁론할 때에 내가 그의 권리를 저버렸다면
하나님이 일어나실 때에 내가 어떻게 하겠느냐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에 내가 무엇이라 대답하겠느냐 나를 태 속에 만드신 이가 그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우리를 뱃속에 지으신 이가 한 분이 아니시냐 내가 언제 가난한 자의 소원을 막았거나 과부의 눈으로 하여금 실망하게 하였던가 나만 혼자 내 떡덩이를 먹고 고아에게 그 조각을 먹이지 아니하였던가
실상은 내가 젊었을 때부터 고아 기르기를 그의 아비처럼 하였으며 내가 어렸을 때부터 과부를 인도하였노라 만일 내가 사람이 의복이 없이 죽어가는 것이나 가난한 자가 덮을 것이 없는 것을 못본 체 했다면 만일 나의 양털로 그의 몸을 따뜻하게 입혀서 그의 허리가 나를 위하여 복을 빌게 하지 아니하였다면 만일 나를 도와 주는 자가 성문에 있음을 보고 내가 주먹을 들어 고아를 향해 휘둘렀다면 내 팔이 어깨 뼈에서 떨어지고 내 팔 뼈가 그 자리에서 부스러지기를 바라노라 나는 하나님의 재앙을 심히 두려워하고 그의 위엄으로 말미암아 그런 일을 할 수 없느니라
-욥기 1장에 하나님께서는 욥을 온전하고 정직한 자라고 말씀하셨다.
욥도 말씀에서 자신의 온전함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말대로 행위가 온전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욥이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행위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에 의해서 자행된다.
보통 사람들은 욥처럼 온전한 행위 속에서 살아가지 못한다.
다른 여자를 탐하기도 하고, 사기를 치기도 하며, 사람들의 권리를 짓밟기도 하고.
가난한 자를 괴롭히는 것이 세상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들이다.
어제 천로역정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 내용을 인용해 욥의 말을 다시 생각해본다.
욥은 자신의 행위의 온전함을 주장하지만 인간은 의로울 수도 온전할 수도 없는 존재이다.
그럼 그의 온전함은 무엇일까. 그는 온전한 사람이긴한걸까.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사64:6)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2:16).라고 성경에서 말하고 있다.
우리는 죄 없으신 분의 의를 덧입지 않는 한 자신의 의나 세상의 의로 구원 받을 수 없다.
행위의 온전함을 보이기 위해 율법학자들은 열심히 율법을 지켰다.
그런데 그것은 남도 속이고 자신도 속는 일이다.
남에게는 율법을 지키고 말씀을 지키니 온전하고 완벽한 사람처럼 느껴지고,
자신도 나는 율법을 지켰으니 나는 완벽하고 온전한 사람이야 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지 못하니
우리는 지키지 못하는 율법에 의해 상실된 우리의 위치를 깨달아야 한다.
욥은 자신의 행위가 온전했기에 이런 말들이 이해가 가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자신이 온전한 자 임을 주장하며 그렇게 알고 있다.
나는 하나님을 만나 내 죄를 처음 보았고,
그 뒤에 더 나은 삶을 살아보고자 행위로써 열심히 노력해 보았지만
최선의 행위 안에서 또 새로운 죄를 발견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낙담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나의 더럽고 끊임없는 죄성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의롭다 여겨지면 더 이상 십자가 사건을 생각하지 않게 된다.
사람은 행위로써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내가 가진 딜레마가 있었다.
내가 죄인인 것만 인식하고, 회개하고 구원받으면 땡인건가?
어차피 나는 죄인이니까 마음 놓고 죄 짓고 회개하면 되는 걸까?
어제 책에서 내게 준 답은 이거였다.
‘그리스도의 의를 믿는 믿음의 참 구원적 힘은
우리의 마음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굴복하게 만들며,
그의 이름과 그의 말씀, 그의 길과 백성을 사랑하게 합니다.’
그리고 나의 딜레마에 대한 답이 주어지면서,
오늘 욥이 주장하는 그의 행위의 온전함에 대한 의문도 풀렸다.
욥의 온전한 행위는 그가 가진 믿음의 구원적 힘이 엄청 났기에
하나님께 굴복하고 그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의 백성들을 사랑한 것이거나...
그는 자신의 온전한 행위에 속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행위가 온전하다는 생각이 들 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떠올리겠습니다.
-죄에 빠지려고 할 때 나의 길과 내 걸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게끔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