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10일 수요일 늦은 묵상
신명기 30:1-10
“모세가 진술하다.”
지금까지 수개월의 모세의 긴 설교가 끝날 즈음에 등장하는 陳述(진술)이란 단어가 의미심장하다.
1절 “내가 네게 진술한 모든 복과 저주가 네게 임하므로”
여러 달에 걸쳐 연속시리즈로 하나님의 언약을 선포했다. 이 모든 것을 진술이라고 했다. 진술이란 단어는 법정용어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소송에서, 당사자가 법원에 대하여 구체적인 법률 상황이나 사실에 관한 지식을 보고하고 알리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전달자였다. 하나님께 들은 법이었다. 언약을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한 것이다.
모세는 갈 수 없는 땅이었다. 그 땅을 경험하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그곳에서 일어날 일들에 대해 진술하는 모세는 내일을 오늘처럼 확신을 가지고 선포한다. 모세의 이러한 태도는 오늘이 내일로 이어지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한지 430년의 시간이 흘렀다. 가깝게는 40년 전 실패를 딛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앞둔 세대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그들의 마음이 부풀어 올랐을 때였다. 가나안 입성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늘의 슬픈 이야기는 건성으로 들려졌을 것이다.
제2의 실낙원이었다. 뼈아픈 실패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였다. 천년 왕국을 지나 나라를 잃어버리고 포로가 된 슬픈 역사를 미리 경고하신다.
가나안은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나라였다. 젖과 꿀이 흐르기 위해서 하늘에서 내리는 이른 비가 필요했다. 늦은 비가 내려야 축복의 땅이 될 수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긋난 길을 갈 때에는 어김없이 저주가 임할 것을 경고하신다.
그러나 오늘의 말씀의 주제는 실패가 아니라 회복이다.
“네 쫓겨 간 자들이 하늘가에 있을지라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모으실 것이며 거기서부터 너를 이끄실 것이라.” 신명기 30:4
하늘가에 있을 지라도 너를 모으시겠다고 하신다. 집 나간 둘째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을 본다. 길 잃은 어린 양을 찾기 위해 생명을 건 목자의 마음이 배어있는 고백이시다. 비록 그들이 실패하여 어려움 속에 있을 때라도 네 하나님 여호와가 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이시다. 사랑이었다.
돌에 새겨진 말씀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마음에 새기시겠다고 하신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네게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네게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이것이 복음이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릴 때, 나도 함께 못 박혔다. 그 못 자국이 내 마음에 베푸신 할례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
십자가는 영원한 나라의 초대장이자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능력이다. 오늘을 제대로 사는 것이 내일에 대한 책임임을 기억하며 영원을 향하여 오늘도 발걸음을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