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9일 화요일
신명기 29:16-29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
하나님께서는 보여주셨다.
‘곧 그 큰 시험과 이적과 큰 기사를 네 눈으로 보았느니라.’ 신명기 29:3
애굽에서의 열 가지 재앙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10문제풀기였다. 애굽의 모든 장자가 죽는 죽음의 문제를 풀고서야 그들은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그들은 보았고 생생하게 체험하였으나 그때까지 그들은 알지 못했다고 하셨다.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신명기 29:4
호렙산 언약과 모압 땅에서 그들에게 세우신 언약을 다시 말씀하신다. 이유는 꼭! 지켜야만 하는 당위성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명백하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언약은 지켜야할 짐이 아니었다. 복의 통로였다. 그러므로 신앙은 회색지대가 없는 것이다. 더더구나 양다리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제 선포하신다. 이 언약은 자유헌장이었다. 복음의 편만함을 선포하셨다. 유아서부터 물 긷는 자까지 이스라엘 진영에 속한 모든 자들에게 주신 언약이었다.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였다. 직업의 귀천을 따지지 않았다. 복음의 특징은 국경을 허문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에는 이방인들은 지옥의 불쏘시개였다. 그러나 노아의 방주 안으로 들어온 모든 생명체를 보존하신 것처럼, 예수 안에서 한 가족 된 그리스도인들을 부르신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 예수님과 하나 된 자들을 부르신다. 나라와 민족을 초월하여 땅 끝을 향하신다. 그리고 얼마든지 부르신다.
지난 40년 광야생활은 평준화 된 삶이었다. 새로운 옷이 필요하지 않았다. 40년 동안 그들의 의복과 신이 해어지지 않게 하셨다. 그들에게 패션이란 말은 사치였다.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었다. 그것이 바로 그들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손길이었다. 황량한 광야에서 그들은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 간간히 실패하기도 했다. 불순종으로 인해 불뱀에 물려 죽어가고 있을 때, 놋뱀을 진에 세우고 그것을 보는 것으로 치료하셨다. 병을 치료하는 놋뱀으로만 알았던 그 사건을 사도요한은 이렇게 소개한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3:14-15 복음의 그림자였다.
이어서 성경의 보석 같은 말씀이 등장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6
자신을 찾아온 유대인의 랍비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이었다. 유대인의 선생으로서 이것도 알지 못하느냐 책망하시면서 선포하신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가나안으로 이주한 후, 생겨날 우상숭배를 크게 우려하셨다. 모세는 복과 저주의 두 갈래 길을 소개하면서 복의 길로 안내하고 있다. 다른 길은 없다고 하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길을 묻는 도마에게 하신 말씀이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사역을 하루 앞두고 있을 때였다. 오늘 신명기 말씀 역시 모세가 죽음을 앞둔 마지막 고별설교였다.
유언의 말씀을 들으면서 길 되신 주님을 향하여 발걸음을 내딛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