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8일 월요일
신명기 29:2-15
“맹세하신대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하여 맹세하셨다고 하신다. 다른 분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간절하시면 이런 단어를 사용하실 수밖에 없으셨을까? 천지를 만드신 창조주께서 보잘 것 없는 인생들과 새끼손가락을 걸으시며 약속하셨다는 말씀이시다.
나는 오늘 하나님의 ‘맹세’란 단어를 읽으면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과 감사가 뒤범벅이 되었다. 한참을 울고 또 울었다. 나 같은 인간과 굳게 약속하셨다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왔다.
오늘 모세를 통하여 온 이스라엘을 소집하셨다. 잃어버리지 않도록 옛 기억을 되살리신다. 애굽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한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신다.
그들은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큰 기사와 이적을 체험한 자들이었다. 적어도 바로 윗대까지 그 사실을 몸으로 체험했던 자들이었다. 40년 동안 옷과 신발이 해어지지 않았다고 하신다. 거듭해서 하나님의 크심과 자비로우심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예행연습과도 같았던 전쟁이야기를 하신다.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과의 전쟁에서 승전을 말씀하셨다. 그것은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의 전투를 앞두고 하나님께서 직접 시범을 보여주신 전쟁이었다.
그때 너희들이 한 것은 말씀대로 순종하며 전투를 벌였던 것을 상기 시키고 있으시다.
그리고 그때 헤스본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철침상을 언급하신다. 바산 왕 ‘옥’의 철침대의 크기를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한 규빗을 대략 45cm라고 할 때, 4m가 넘는 대형 침대였다.
이것은 복선이다.
철기문화를 가진 기마부대를 맨손으로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온 이스라엘이라고 부르셨다.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였다. 현재 이스라엘 진영에 머무는 모든 자를 부르셨다.
여호와께 네게 말씀하신대로 ‘오늘 너를 세워 자기 백성을 삼으시고 그는 친히 네 하나님이 되시려 함이니라.’고 하셨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1:12
주님께서 우리들을 부르실 때에도 동일하시다. 신분을 초월하신다. 피부색의 한계를 정하시지 않으셨다. 빈부를 따지지 않으셨다. 유일한 조건은 예수의 이름을 믿는 것 하나였다. 이것이 은혜이다. 복음이다.
이스라엘 진영에 거주하는 모든 자를 부르셨다.
주 안에 있는 모든 자들을 부르신다.
사도 베드로가 설교할 때 3,000명의 사람들이 세례를 받았다. 그때 담대히 외친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사도행전 2:38-39
그렇다. 얼마든지 부르신다는 말을 이렇게 바꾸어보았다.
‘아직도 나는 배가 고프다.’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요청이시다. 오늘도 여전히 두 팔 벌리고 서계신 주님께 죽어가는 영혼들을 인도하여야만 한다. 내가 서있는 현장 그리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좋으신 하나님을 전하며 그리스도의 편지로 살아가기를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