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6일 토요일
신명기 28:58-29:1
“경고”
판이하게 달랐다. 순종과 불순종의 길은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들어가도 복을 주셨다. 나갔을 때에도 복이 따라왔다.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돈은 버는 것이 아니라 따라오는 것이라고. 이스라엘 백성이 그랬다. 그러나 오늘은 심각하게 정반대의 길에 대해서 길게 말씀하신다. 애굽을 기억하라고 하셨다. 그곳에서 재앙의 극심함을 경험한 이스라엘이었다. 그런데 말씀을 떠난 인생들에게 그보다 더한 재앙을 선언하신다. 멈추지 않는 고통을 말씀하셨다. 오늘을 살면서 내일을 기다려야만 했다. 그것을 미래에 대한 꿈이 아니었다. 심한 고통에 몸 둘 바를 모르는 처절한 기다림이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멸망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다. 그곳이 바로 지옥이었다.
애굽의 고센 땅은 인큐베이터 같은 곳이었다. 그곳에서 민족을 꿈꾸셨다. 그들은 그곳이 자신들이 대대로 살아야할 곳인 줄 알았다. 애굽 땅에서 호의호식하였다. 배부르고 등 따스하니 이제는 잃어버릴만했다. 그들은 안주라는 덫에 발목이 잡혔다. 그들이 약속의 땅을 잊어버릴 때쯤에 고난의 바람이 불게 하셨다. 그제서야 하늘을 보게 된다. 잃어버린 기도가 절로 나왔다. 살려달라고 애써 외쳤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애굽에 자유를 선포하셨다. 그들은 고센 땅을 제외한 애굽 전역에 벌어진 10가지 재앙을 몸소 체험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애굽 사람들에게 등 떠밀리다시피 애굽을 떠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선택한 자유는 얼마가지 못한 듯 했다. 가로막힌 홍해 앞에서 그들은 뒤쫓아 온 애굽 군사들을 보며 절규한다. 우리를 죽일 때가 없어서 여기까지 와서 무덤을 팠느냐며 원망을 늘어놓았다. 우리들의 인생이 그렇다. 그러나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바다가 길이 되는 꿈을 꾸지 못하였다. 절망의 순간 하나님께서는 오른팔로 바다를 가르셨다. 바람이 불었다. 마른 땅이 되도록 그리고 엄청난 물벽이 만들어지고 그곳을 향하여 걷기 시작하였다. 자신들의 등 뒤에는 애굽 군사를 가로막은 불기둥이 있었다. 40년 동안 무섭게 추운 광야의 밤을 지나게 한 따뜻한 불기둥이었다. 그들은 몰랐다. 자신의 앞을 가로막았던 홍해가 진정한 자유인을 선포하는 합동세례식 현장이었음을. 2,000이 지난 후, 바울의 입술을 통해서 말씀하셨다.
기록된 말씀대로 살아야만 한다고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계속해서 그리고 반복해서 말씀하신다. 잊어버리지 말라고 바위에 새기셨다. 잊지 말라고 당부에 당부를 거듭하신다. 오늘 말씀은 위협이 아니었다. 실제였다.
오늘 나는 신명기에서 나의 불순종과 불충함을 발견한다. 반드시 돌아서야함을 배운다. 말씀과의 동행이 바로 주님과 함께 걷는 길이기 때문이다. 어제 말씀드렸다. 말씀을 떠난 것은 단지 한 가지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주님 전체를 잃어버린 것임을 명심해야만 한다. 주님과 등진 삶은 그것 자체가 어둠인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말씀을 지키는 것이 생명이라고 하셨다. 말씀이신 주님께서 나의 삶의 중심에 계신다. 내 식탁에 늘 함께 하신다. 나와 함께 먹고 마시겠다고 하셨다. 식구가 되신 것이다. 同苦同樂(동고동락)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이지선 자매의 간증을 들었다. 불속에서 3도의 화상을 입고 기적처럼 살아났다. 그때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가족들이 있었다. 죽음을 생각하면서 그러나 에스골 골짜기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꿈을 꾸면서 밥을 삼켜야만 했다. 食口(식구)란 이처럼 함께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 그러셨다. 주님께서는 나의 기쁨의 현장에만 계시겠다고 하지 않으셨다. 내 슬픔의 그 자리에 함께 하신다는 말이다. 임마누엘의 축복은 말로 다할 수 없는 복이다. 주님과 함께 호흡하는 이 순간 공기가 맛있다. 거룩한 호흡이 시작된 것이다. 말씀을 따르는 삶이 바로 넝쿨째 굴러들어오는 복이다.
수많은 저주를 말씀하셨지만 그 지뢰밭을 피하는 길은 오직 한 길 뿐이다. 예수님 한분 외에는 그 길이 없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곧 길이요 생명이라고 하셨다. 이제 내가 오늘 걸어 가야할 길이 보일 것이다. 주님 계신 곳에 내가 있으면 된다. 주님의 말씀하실 때 그대로 걸어가면 된다. 말씀과 동행하는 삶이 바로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삶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