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3일 수요일
신명기 28:15-29
저주
저주는 하나님의 한풀이가 아니다. 자식들을 자기 품으로 돌이키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그는 갈 바를 알지 못했다고 히브리서 기자는 증언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의 인생의 행로를 인도한 것은 말씀의 나침반이었다. 그가 곁길로 갈 때에도 그의 가슴 한편에는 복의 근원이 되리라는 약속의 말씀이 오롯이 새겨져 있었다. 그의 인생을 한 마디로 표현하라면 오뚝이 인생이라고 할 것이다. 그가 여러 번 넘어졌으나 다시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말씀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인 삶의 방식은 다양하다. 그러나 목표는 하나이다. 하나님 나라이다. 비록 세상에 휩쓸려 홍수처럼 떠내려갈 때에도 다시 붙들 피난처는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어제에 이어 오늘 복과 저주의 길이 어떠한지를 열거하셨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선택할 것을 종용하신다. 말씀을 떠난 인생의 비참함에 대해서 열과 성의를 다해서 적나라하게 설명하셨다. 복과 저주의 양 갈래 길에서 그 길의 선택권을 우리들에게 허락하신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3:20절 말씀 속에서도 읽을 수 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주님께서는 문을 두드리신다. 문을 여는 선택권은 나에게 있다는 것이다. 주님은 인격적이신 분이시다. 절대로 강제로 문을 여시는 법이 없으시다. 두드리시며 기다리신다.
문을 여는 자에게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복을 허락하신다. 한 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시겠다고 하셨다. 食具(식구)가 되시겠다는 선언이시다. 세대주가 되시겠다는 것이다. 호주가 되셔서 함께 하시겠다는 말씀이시다. 더 이상의 복은 없다. 하나님께서 내 삶에 둥지를 트시겠다는 말씀이시다. 그것이 임마누엘의 복이다.
저주의 내용을 읽으면서 나의 부패와 죄성을 다시 한 번 돌아본다. 내가 얼마나 무능하고 무책임한 지를 돌아본다. 이러한 나를 부르셨다는 사실이 정말 감사요, 행복이요, 기쁨이다.
나가도 저주받고 들어와도 저주받는 인생이었다. 아니 영원한 형벌에 처해질 사형수였다. 저주받은 인생이었다. 이러한 나를 자녀로 받아주셨다. 이것이 은혜이다.
오늘 저주의 목록을 읽으면서 억만 가지 저주에서 건지신 주님을 노래한다. 이것이 찬송이다. 오늘 저주의 목록 하나하나에서 나의 옛사람을 본다. 그리고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인치시기 위해서 피 흘리신 주님을 바라본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기꺼이 자신의 몸을 던지신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본다.
이른 새벽 집을 나섰다. 소리 없이 내린 눈이 눈앞에 펼쳐졌다. 눈을 치울 것을 생각하며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런데 교육관 입구가 눈이 치워 진 채로 깨끗하다. 교회마당도 깨끗하였다. 누굴까? 생각도 잠시 바쁘게 방송실로 향했다. 여기서 깨닫는 사실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산다는 것은 바로 주님의 십자가 때문인 것이다. 나는 하나님 나라를 들어가기 위해서 한 일이 없다는 것, 다만 주님께서 하신 일을 인정하는 믿음이 있다는 것뿐이다. 누군가 눈을 치워준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혹시 인생의 행로에서 피곤하거든 자신을 주님의 말씀에 비추어볼 것을 권면한다. 그것은 멸망의 채찍이 아니라 사랑의 매인 것을 다시 깨닫기를 바란다.
징계와 처벌은 다른 것이다. 인생의 길에서 목마르다면 생수이신 주님께로 빨리 돌아가기를 바란다. 이것이 오늘 저주의 말씀을 통해서 내게 베푸신 은혜이다. 주님으로 배부른 아침이다. 감사가 넘친다. 기쁨이 샘솟는다. 행복하다고 소리 높여 외치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