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나무가 시들었고무화과나무가 말랐으며 석류나무와 대추나무와 사과나무와 밭의 모든 나무가 다 시들었으니 이러므로 사람의 즐거움이 말랐도다 (요엘 1:12)
나는 먹을 것이 끊어지므로 기쁨과 즐거움이 끊어집니다.(1:16) “이러므로”의 수준이 내 믿음의 현주소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묵상을 하다보니 많이 부르던 찬양이 연상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박국 3:17,18)
나는 언제 “이러므로”의삶이 아닌 “찌라도”의 삶을 살 것인가 막막해 집니다. 그런데, 관주를 보니, 친숙한욥기가 언급됩니다.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 (욥기 13:15)
나는 고난 받을 때, 욥처럼 하나님께 내 사정을 진술하고, 하나님과 변론하고, 내 사정을 아뢰는 단계는 할 수 있겠다고 생각이듭니다.(3,15,18절) “찌라도”의 수준은 안되어도, “그러나”의수준은 갈 수 있다는 소망이 생깁니다.
이렇게 묵상을 마무리하려는데, 15절 말씀 앞에 1)이 보이고 아래를 보니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1)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나는 그를 의뢰하리니
내가 “그러나” 수준으로나아가면 하나님이 “찌라도”의 수준과 동일하게 쳐 주신다는말씀으로 듣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