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25일 화요일
신명기 25:11-19
“넘지마라, 정직하라, 잊지마라”
인간사에 있어서 싸움은 생존의 기술이라고 하겠다. 인류사를 돌아보면 전쟁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 싸움은 형제간에도 있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해서는 안 될 명확한 한계를 정하셨다. 하나님의 마음은 섬세하다 못해 적나라하기까지 하다. 이보다 실제적일 수 없다. 너무나 구체적이다. 하나님의 양육방법은 바로 일일이 지시하시는 것으로 출발한다. 넘지 않아야할 도가 있다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이 한계선이야말로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 꼭 적용해야할 귀한 교훈이다.
율법에서 가르치기를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보상하거나 배상할 것을 명령하셨다. 현 중동사태도 이 원리가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는데, 얼마 전, 이스라엘 청년들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불에 태워 죽인 사건이 발생하자, 즉각적으로 보복공격을 시작하였다. 급기야는 전면전으로 확대되어, 수많은 무고한 민간인들이 죽고 폭격으로 집을 잃었다. 도를 넘어선 것이다. 지나친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복법을 허락하신 것은 앞선 교훈과 동일하다. 도를 넘어선 보복을 금지하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그릇된 마음은 하나님의 사랑이 스며있는 한계법.을 지나쳐버렸다. 오늘 한 여인의 도를 넘은 보복을 금하신다.
그리고 정직을 요구하신다. 이것은 정당한 이윤을 추구하라는 것이다. 저울추를 속이지 말라고 하신다. 경제활동에 있어서 가장 요구되는 것이 정직이었다. 저울추의 역할은 균형이다. 이 균형이야말로 중용의 삶과 닮아있다. 도를 넘지 말라는 말씀과 일맥상통한다. 그리고 이 균형 감각이야말로 축복의 통로라고 약속하신다. 정직은 바로 나의 생명과 연결되어있다고 하셨다.
15 오직 온전하고 공정한 저울추를 두며 온전하고 공정한 되를 둘 것이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 날이 길리라
그에 앞서 거짓을 원천적으로 차단하신다. 그릇된 저울추와 두 종류의 되를 두지 말라고 하셨다. 근원적으로 두 가지 마음을 갖지 않도록 하신다. 정직에 있어서 타협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13 너는 네 주머니에 두 종류의 저울추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넣지 말 것이며
14 네 집에 두 종류의 되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두지 말 것이요
이어서 아말렉 사건을 상기시키며 잊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지나친 과거였지만 그것은 잊지말아야할 역사였다. 지나간 이야기가 오늘의 삶을 지배하라고 하신다. 잊지 않는 것이 바로 저울추의 균형과 동일하다. 오늘에만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제의 일을 거울삼아 오늘을 사는 균형이야말로 내일을 여는 지혜이기 때문이다.
‘저울추와 되’는 기준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법이 바로 인생의 기준이다.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는 삶을 위하여 “넘지 마라, 정직하라, 잊지 마라.” 세 단어를 곱씹으면 하루를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