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20일 목요일
신명기 24:1-4
“사람 사는 이야기(1)”
충청남도 봉산면 화전리
어머님께서 영면하고 계신 곳이다. 고조할아버지부터 최근 돌아가신 분들이 모셔진 선산이 있는 곳이다. 수많은 묘비명을 보면, 여자 분들은 이름이 없다. 예를 들면, 金海 金氏 之墓라고만 적혀있다. 모두가 그랬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이해가 가지 않을 일이지만 멀리 거슬러 올라가지 않고, 몇 대만 올라가도 우리 여자는 족보에 이름이 없었다. 조선시대까지 이어 내려온 옛 여성들의 인권이 어떠했는지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하물며 4,000년 전, 까마득한 옛날 여성들의 인권이야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여성들은 증인으로도 인정받지 못했던 시대였다. 자신이 싫으면 언제든지 버릴 수 있었던 여성의 인권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다. 인간의 부패로 여성의 기초적인 인권마저도 짓밟던 가부장적 시대에 그야말로 획기적인 선언이었다.
자기 소견대로 이혼하던 남성들을 향한 제동장치였다. 이혼증서를 써주라고 하셨다. 남자로부터 버림받은 여인을 사회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배려이셨다. 하나님의 일하심이었다.
남자가 아내와 이혼할 때, 그것에는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 했다. 정식의 이혼증서를 아내에게 주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당해야 하며 시간과 돈이 필요했다. 따라서 율법으로 인해서 멋대로 이혼할 수 없었다. 이혼증서는 남편이 직접 쓰든가, 대필시킨 자를 법정에서 증인에 의해 인정시켜야 했다. 이것이 즉시 결정되지 않았던 것은 생각을 돌이키게 할 기회를 가지게 하기 위해서이다. 증서에는 “보라 그대는 누구와 결혼해도 자유이다”라고 쓰는 것이 보통이었다. 증서는 주로 내구성이 강한 양피지에 썼는데, 잘 지워지지 않는 잉크로 작성되었다.
현 법률에 정한 이혼숙려기간제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거듭 생각하고 신중한 결정을 유도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하여 이혼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숙고할 것을 촉구하고 계신다. 그리고 버린 여인과 또 다시 합치는 것을 금하셨다. 그만큼 결혼은 신중해야함을 가르치신 것이다.
바다에 나갈 때, 한 번 기도하라, 전쟁에 나갈 때, 두 번 기도하라, 결혼할 때, 세 번 기도하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결혼의 신중함을 일컫는 말이다.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마태복음 5:31-32
아내를 버릴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배우자의 음행뿐임을 천명하신다. 하나님의 속마음을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