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욥기 12장입니다.
욥은 소발이 말하는 것을 모두 알고 있으며 그가 자신을 가르칠 위치에 있지 않다고 비꼬면서
그가 말한 내용들에 대해 응답합니다. 욥은 자신이 의로움에도 이제는 조롱거리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악한 자가 형통하니 이것을 동물과 새와 물고기와 땅이 모두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연을 관장하시며 제사장을 세우기도 폐하기도 하시며 나라를 일으키기도
멸망하게도 하시며 지도자의 총명을 빼앗기도 하시고 길 없는 거친 들에서 방황하게도 하심을
확신에 차서 말을 이어갑니다.
욥은 오늘 말씀에서 세 가지 일을 행했습니다.
첫째, 그는 다시 그의 의로움을 주장합니다.
두 번째는 물고기와 새와 동물들과 땅도 알고 있는 진실을 앵무새처럼 생각 없이 말하는 소발의
말이 잘못되었음을 냉소적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진실”은 하나님께서 선한 자를 보호하고
보상하시며 악한 자에게는 벌을 내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전능한 능력을 확신했습니다.
이 셋 중에 둘에 관해서 욥은 옳았습니다.
그는 의로운 것에 관해서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소발이 전에 말했었던
그러나 삶의 직접적인 관찰을 통해서 거짓임이 드러난 진실에 집착합니다. 만약 그가 의롭다고
한다면 그와 소발이 믿고 있는 바와 같이 그가 지금 겪고 있는 질병과 자식을 잃은 것과 파산상태의
환경에 있으면 안 됩니다.
욥에게는 단지 두 가지 논리적인 결론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가 의롭지 않거나 악한 것은 벌을 받고 선한 것은 보상을 받는다는 원리와는 다른 것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가 의롭지 않다면 그는 어디가 잘못되었는지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는 만약 선한 것이 보상받고 악한 것이 벌을 받는 것과는 또 다른 원리가
존재한다면 비이성적이며 절대적이고 사람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진 분이 아니라면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라는 걸까요?
그리고 만약 하나님께서 단지 능력만 있으시고 의로움과 정의를 권장하는 분이 아니라면 그러면
하나님과 자연의 힘은 도대체 무엇이 다르다는 것일까요?
만약 차이가 없다면 하나님은 그저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능력일 뿐입니다. 그리고 만약 하나님이
그저 알 수 없는 자연의 힘으로 의인화된 존재라면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소발에게 이러한 상황은 간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공의의 하나님을 지키기 위해서는, 욥의 환경이 욥이
죄를 짓도록 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욥이 그가 죄 없음을 결단하는
주장은 소발의 이런 생각들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욥에게는 상황이 더욱 나빴습니다.
그는 모든 단계에 있어서 참기 힘든 인내의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정의에 대한 의구심이 점점 늘어났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해 확신하던
때조차도 그의 죄 없음을 주장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정의가 이해할 수 없고 이득이 없는 고통의 세계로부터 구출될 수 있을까요?
그 답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그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인간을 죄로부터 구원하심으로써
자신을 인간의 논리의 진퇴유곡으로부터 빠져 나오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통해서
고난이 곧 구원을 위한 것이며 하나님의 정의는 구원과 관련되는 것이므로 인간의 정의의
한계를 초월하는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인류를 구원하심으로써 스스로를 구원하셨습니다. 구원을 위해서
정의가 필요합니다. 고난은 구원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며 옳고 그름의 장막을 찢어 버리게 합니다.
물고기에 물어보지 마십시오. 그들은 사랑을 모릅니다.
8년 전 이맘때 쯤 시흥에 있는 작은 아파트의 나의 책상에 성경책을 펼쳐 놓은 채로 팔꿈치로
턱을 괴고 벽을 응시하며 앉아있던 기억이 납니다. 몇 달 전에 저는 YMCA의 훨씬 더 작은
방을 떠났고 직업도 얻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전과 똑같았습니다.
고통스럽고 아프고 공허하고 의미를 잃었으며 이 모든 것이 왜 왔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욥의 모습이었습니다. 여전히 물고기에게 질문하고
있는 저는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서야 저는 예수님에게 물었고 고난의 환경은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에게 묻기까지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린 것을 믿을 수 없습니다. 나의 문제는
바로 들을 귀가 막혀서 “나에게 물어보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주님! 고난을 통한 당신의 부르심을 완고함으로 듣지 못한 저를 용서해 주옵소서.
아무 이득이 없는 것 같은 시간이었지만 이 시간을 통해서 당신의 말씀에 대해서
깊이 묵상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나의 간증을 통해서 병원의 침상으로부터 어머니에게 전할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