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은 욥기 14장입니다.
욥은 계속 하나님께 일방적으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생애가 짧고, 힘든 생애를 사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그를 홀로 있게 내버려두지 않으실까? 라고 말했습니다. 새로운 싹이 필 수 있는 찍혀진 나무와는 다르게 사람이 죽으면 그걸로 끝입니다. 욥은 하나님의 진노가 다 지나갈 때 까지 무덤 안에서 숨고 있기를 원한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대답이 마침내 그에게 임할 때 그의 부활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의 죄는 더 이상 기억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기다리는 동안에는 고난과 고통과 애곡이 있습니다.
비록 욥은 삶의 우울한 부분을 그리고 있지만 그는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처사에 대한 그의 순종의 정당성에 대해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욥은 하나님께 말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가 찾는 대답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분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비난하기를 거절하고 죽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그는 그의 환경을 그의 삶과 하나님에게 반영하였으며 그의 고난에 대한 대답을 요구하였습니다.
욥과 달리 저는 제가 받아드릴 준비가 되어있고 듣길 원했던 하나님의 대답의 몇 년간의 침묵기 후에 하나님을 외면했습니다.
저는 Carolina로 돌아가서 저의 새로운 아내와 새로운 가족과 그리고 재정비된 저의 경력에 대한 저의 상상의 삶을 살기 원했습니다. 시흥에서 혼자 살며 첫 번째 영어마을을 설립하는 것을 돕는 일은 4년 전에 하던 일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것은 YMCA에서 직장 없이 혼자 사는 것 보다 더 좋은 일이었지만 제가 원하고 제가 느끼기에 가치가 있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욥과 다르게 저는 잠시 동안 하나님과 그만 싸우기로 하였습니다. 저는 더 이상 그렇게 싸울 힘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저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세상에서 가장 온화한 메시지로 한 동료를 보내주셨는데 그 동료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는 것처럼 보였고, 저의 믿음이 그의 믿음보다 뒤떨어진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 어린 청년은 그의 성실한 믿음 때문에 종종 다른 선생님들의 농담과 부딪혔습니다. 그러나 매일 같은 그의 다정한 목소리와 행실을 통해 그는 저를 하나님의 말씀에 연관시켜 주었습니다. 저는 제 스스로 성경읽기를 멈췄고, 그의 말이 말씀이 되었습니다. 그때까지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저의 전공이 영적으로 장님이 되는 것 이라는 것은 놀랍지도 않습니다.
이 청년은 저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친구가 서울에서부터 시흥에 있는 대부도로까지 먼 출근을 했어야 했기에 대부분을 직장에서 만났습니다. 그는 힘든 삶을 살았지만 저는 한 번도 그를 통해 불평을 들어보지 못하였습니다. 제가 불평쟁이 였습니다.
저는 저의 아내를 만나고 하나님께서 그녀를 사랑하라고 불러주실 때 까지 하나님과 논쟁하는 것을 다시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포기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아내를 통해서 제 삶에 다시 임재해주시는 기로 사이에 저의 자상한 친구인 김기영씨가 저의 분노와 자포자기한 불평의 시간동안의 하나님의 응답이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오늘 이 저녁까지 바로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욥은 김양재 목사님께서 지적하진 것처럼, 비난하는 그의 친구들 속에서 하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불평으로 가득 찼을 때는 현실에 대해 아무것도 보지 못합니다. 저는 계속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장님이되는 것은 저의 전공 이라고.
주님, 저를 하나님께로부터 눈멀고 귀먹게 하지 마옵소서. 주님! 제가 이러해야만 한다고 말하는대로 당신의 계시가 나타나야 함을 주장하지 않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저를 중심잡힌 사람이 되게 해주시고, 지난 63년동안 제 스스로 중심잡기를 실패했음을 고백합니다. 저를 향한 당신의 뜻이 당신의 영광을 위해 세워지기를 바라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