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17일 월요일
신명기 23:1-8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이른 새벽 비가 내렸다. 촉촉이 적셔진 도로를 따라 교회를 가는 마음에도 은혜의 단비가 젖어왔다. 오늘 본문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는 제한에 관한 규정이다. 차별이라는 단어가 맨 먼저 떠오른다. 고아와 과부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언제나 긍휼이셨다. 그럼에도 오늘 장애인에 대한 말씀은 마음에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사도 바울을 통해 주신 말씀으로 이것은 차별이 아니라 ‘특별’이었음을 알게 된다.
우리가 그랬다.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갈 수 없는 자들이었다. 10대가 아니라, 3대가 아니라 영원히 끊어진 자들이었다.
에베소서 2:11-19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오늘 나는 이 은혜의 말씀을 두 손으로 받는다.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었다. 할례 받지 못하였고, 그리스도 밖에 있었다.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었고 세상에서 소망이 없는 자였다. 나의 과거를 돌아보는 말씀이다. 추한 것이 추한 줄도 몰랐고 죄가 죄인 줄도 몰랐다. 목마른 자였다. 무지한 자였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았다. 옛 사람을 벗어 버리지 못하였다. 늘 넘어지고 아파하던 자였다. 그러나 이제 나를 위해서 피 흘리신 주님을 다시 바라보며 나의 무능을 아뢴다. 내 힘으로 살아보려 했던 어리석음을 내어 드린다. 주님의 보혈에 내 것을 조금이라도 보태려고 했던 무지함을 회개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진정한 사생자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히브리서 12:8
그렇다. 계속되는 잘못에도 아무런 제재가 없다면 오히려 그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오늘 내게 다가온 고난 있다면, 감사할 일이다. 이미 주신 고난의 의미를 되새길 수만 있다면 그것이 바로 살길이다.
그러므로 이제 다시 일어선다.
그리고 이렇게 외친다. 주께서 하셨습니다. 주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큰 목소리로 외친다.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라고 하신다. 하나님 나라로 초대하신다. 죄송함으로 나아가 기쁨으로 일어선다. 이것이 은혜이다.
시편기자의 말씀을 곱씹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편 119:7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