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본문은 욥기 11장입니다. 욥의 절규에 대해 나아마 사람 소발이 대답합니다.
소발은 욥에게 스스로의 죄를 살펴보라고 권하고 비판하며 전형적인 충고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욥을 벌하고 계시기에 지금 고난 중에 있다고 말합니다.
소발이“네가 하나님의 오묘함을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완전히 알겠느냐?”라고 했던 말은 옳은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 소발이 한 말을 살펴볼 때, 하나님에 대한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욥이 하나님께 헌신하고 어떠한 악도 행하지 않을 때에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고 말함으로써 기복적인 하나님으로 무한한 하나님을 유한하게 제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발은 선하게 행하시는 하나님과 복 주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만 말합니다.
그러나 선하고 좋은, 복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복음은 고통에 대해서 말할 때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고통은 모든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느끼는 감정입니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이유는 소망, 믿음, 사랑의 메시지 중심에 고통받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 유일한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만이 고통의 시간에서 돌이키게 하십니다. 고통이 바로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때때로 몇 년의 시간이 걸리지만 결국에는 예수님께 돌아옴으로 위로를 받습니다. 이 세상에 예수님 외에 그 누구도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의사로부터 좋지않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내일이면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가 주일 예배를 위해 준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의사는 “불가능하다”라며 제 무릎의 붓기와 통증이 사라지기 전까지 병원을 떠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퇴원 전에 걸었을 때 느꼈던 통증이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아마도 월요일에 퇴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가벼운 고통을 다루어가시는 하나님의 오묘함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까요?
병원에 방문하셨던 모든 분께 치유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한 가지 부탁을 드렸습니다. 저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저를 위해 중보하기 위해 병원에 오신 분들임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몇몇분이 쑥스러워 하시기도 했기에 저는 제 무릎에 손을 대고 기도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제 부부목장, 짐 스트롱과 그의 가족, 데이비드 리, 처남과 장모님, 장인어른, 아내 모두가 오랫 동안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그리고 중보하겠다고 이름을 남긴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에게 말하지 않고도 지금도 기도해주고 계신 여러 사람들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중보기도자들이 계시다는 사실에 저는 기도의 힘이 느껴져 기분이 무척 좋고 들떠 있습니다.
중보 기도의 능력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 기도를 받는 사람이 되어야 했습니다.
의사가 제가 원하는대로 일찍 퇴원할 수 없다고 했다는 말을 아내에게 했을 때, 아내는 순종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순종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저 목발을 짚고 퇴원하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렇게 할 자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 자신과 제 무릎에 가장 좋은 방법에 순종할 자유 또한 있었습니다. 저와 같이 오만한 사람에게는 순종은 겸손을 배우는 가장 가치있는 훈련입니다. 저는 오늘과 같이 처해진 상황 속에서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제 먼 과거와 가까운 과거, 현재 상황에 대해 해석할 때, 욥을 떠올리며 욥의 경험을 적용해보았습니다. 때때로 욥의 친구들이 옳았다는 것을 압니다. 대부분 제가 겪었던 고통의 경험들은 제 자신의 죄로 인한 결과였기에 피할 수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통 속의 오묘함도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수영장 테라스에서 떨어져 무릎 뼈가 골절된 것은 어떤 죄와도 상관이 없습니다. 뭔가 다른 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저는 제 죄와 병원에 일주일 혹은 그 이상을 입원하고 있어야 한다는 일 사이에 직접적인 상관관계는 없는 것을 압니다.
고통받는 상황 속에 있는 것이 훈련을 받기에는 좋은 시간입니다. 오늘 저는 길게 통화하는 것이 입원한 다른 환자들에게 방해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누군가 이야기해주기 전까지 저는 10명이 함께 있는 병실을 나와 밖에서 통화해야된다는 것을 깨닫지도 못했습니다. 얼마나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못한 행동이었는지! 그래서 저는 저 자신과 통화하는 사람만을 생각한 것에 대해 회개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된 것에 대해 바로 사과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저는 제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필요와 요구에 대해 얼마나 신경을 쓰지않지에 대해 놀랐습니다. 제가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 주에 이사회 회장님과의 전화 통화에서 저는 여러 문제를 제기하고 몇 가지 문제에 대해 의논했으며 이에 대해 고쳐야 할 점과 지도 사항들을 받게 되었습니다. 병원에 있지 않았더라면 이사회 회장님이나 저, 둘 중 아무도 이런 대화의 시간을 가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학교에 도움이 될 정기적인 의사소통 시간에 대해 서로 생각을 같이했습니다.
코타 키나발루와는 달리 샘 병원에서 아침에 큐티 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침에 병원은 무척 바쁘기 때문입니다. 많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문진을 돌고, 환자들이 깨어 위문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아침 식사가 오가며, TV가 켜져 있고, 청소를 하며 전화통화를 하는 시간이 바로 아침입니다. 저녁에는 지금처럼 병원이 조용합니다.
저는 골절된 무릎으로 병원에 입원해있는 지금의 모습과 의사가 퇴원까지 기다리라고 한 사건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더 많은 것을 가르치고 싶어하십니다.
주님, 제가 주님의 뜻에 순종하게 하소서. 제 문제에만 사로잡혀 사랑으로 주님을 섬기고 다른 이들을 섬기는 일에 소홀하지 않도록 하소서. 함께 있는 환자들을 불편하게 했던 점을 용서하소서. 사랑으로 중보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