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2:1-25)
수능날,
믿음 없는 딸을 대신하여 믿음이 온전한 “욥의 절규(?)” 덕택에,
하나님이 응답하셔서 잠시나마의 평안(10:20)이 있을지 모른다는 저의 억지(?) 말씀해석대로....
잠시나마의 평안을 보냈습니다.
변별력이 없어진 수능으로, 수시 논술시험을 이리저리 재서 선택할 입장이 되지 않습니다.
아침에, 오후에 계속해서 논술 시험을 봐야 하고, 저는 특별기사로 라이드 겸, 식사 서브겸, 기도하는 제사장으로 동행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오후 시험을 위해 딸을 고시장에 들여보내 놓고 차안에서 큐티 나눔을 올립니다.
딸은 두 번째라 모든 것이 평안하다고 합니다. 웃고.. 여유 만만...
애비는 오히려 두 번째라 속이 타는데...
유일하게 재수생으로 참석한 두 번째(!) 수능기도회만 무척 위로가 되었을 뿐입니다.
오늘 욥의 답변을 보니... 욥이 조금씩 친구에 대한 실망과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하나님을 객관적으로 보고 기술하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 권능을 찬양하며 모든 흥망성쇠를 관장한다고 하십니다.
그런 하나님을 불러 아뢰어 들어서(4) 안다고 하십니다.
10년을 돌아 지금의 전공의 자리에 오게 된 나의 인생경로를 보아도 흥망성쇠를 결정하시는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불러 아뢰어 들은’ 기억이 없습니다. 나중에야 내 맘대로 했음을 깨달았습니다.
딸에게는 어떠한 하나님일까?
재수의 인생 역경이 조금이나마 해석이 될까?
수능기도회를 나오면서, ‘입시고난은 제일 약한 것 같아!’ 이것을 깨달았다고 하니... 조금은 해석이 되나 봅니다.
그럼에도, 수시입시가 끝나면 뭘하고 싶다고 해서.... ‘하나님께 기도해보고 응답하시는 것을 들어보자’ 라고 했는데... 딸이 답이 없습니다.
아직, ‘불러 아뢰어 들으심’의 믿음이 온전히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불러’까지는 되고, 1년 재수에 ‘아뢰어’까지는 된 것 같은데...
정말 스스로 ‘들으심’의 믿음까지 성장되기를 소원합니다.
어쨌든 모든 양육과 섬김을 하겠다고 하니, 기대가 됩니다.
적용) ‘불러 아뢰어 들으심’의 믿음의 본을 보이기 위해, 더 열심히 가족 큐티나눔을 하겠습니다. 딸의 진로를 ‘들으심’으로 적용하겠습니다.